아소, 님하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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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종_최명희
아직 가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른 듯 하였지만, 성당의 묵은 담벽 너머로 우거져 보이는 몇 그루 나뭇가지에 기우는 햇빛은, 황토색을 띠었다
그 나뭇가지들은 부옇게 보였다.
마치 엷은 먼지를 한 겹 쓰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금방이라도 바람이 불어와 나무가 몸을 털면, 후루루 햇빛은 날려가 버릴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아까 한낮이 창창했을 때부터도 이렇게 시가(市街)는 황토색이 아니었던가 싶었다.
어쩌면 그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닐는지도 몰랐다.
벌써 몇 달째, 날만 새면 울려오던 불도저소리와 함께 이미 공기 속에 자욱히 떠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그저 길목 한쪽 귀퉁이에서 장난처럼 시작되던 그 소리는, 이제 어디서나 들려 왔다.
드르르르 위이잉
드르르르 위이잉
땀을 뒤집어 파헤치는 불도저의 칼삽은, 어디에고 닿기만 하면 그것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그 소리는, 흡사 귓속으로 자갈무더기를 들어붓는 것도 같고, 그 곁을 지나가면, 내장까지 울리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래서, 길거리에서는 아예 말을 나누지 못했다.
말이 소리에 먹혀버리기 때문이었다.
때때로 사람들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옹기종기 모여 서서 공사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거대한 이빨을 번득이며, 땅 속으로 깊숙이 고개를 번쩍 치켜올려지는 포크레인 대가리.
컴컴할 정도로 아득하게 파내려 간 지하(地下)에 드러난 붉은 흙살.
그런 것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공사장의 주변 배수관에서는 끊임없이 흙탕물이 쿨 쿨 쿨 쏟아져 나와 길바닥에 넘쳤다. 골목마다 길거리마다, 함부로 쌓여있는 각목과 시멘트 벽돌, 자갈 무더기들이 발끝에 채였다. 얼기설기 울려지고 있는 건물 위쪽에서 무엇이 떨어져 내릴 것 같은 기분에 순간적으로 아찔하여 어깨를 움츠린 채, 발끝을 조심하며 비켜가도, 자칫 뒤뚱거리거나 부딪치는 일은 예사였다.
그럴 때, 인부들은,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 중략 …
단편소설「만종」은 1980년 전북대학교 교지 비사벌 8호에 실렸다.
脫空_최명희
어깨를 오그렸다. 보이지 않는, 어쩌면 명주올같이 가느다란 끈으로 온 몸을 죄는 것 같았다. 시간을 알고 싶었다. 아직도 그가 오려면 멀었을는지도 모른다. 내게는 시계가 없었다. 집에서 너무 빨리 나왔던 듯싶기도 했다. 머리를 높이 묶어 올린 찻집 여자는 지치고 굳은 얼굴로 손톱 밑을 파내다가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아버리는 바람에 시각을 물을 수가 없었다.
… 중략 …
1971년 10월 단편 「脫空」으로 숙대신보사에서 주는 제2회 대학 문학상을 소설 부문에서 받았다. 이 작품은 전북대학신문에 세 차례에 나누어 연재했다.
貞玉이_최명희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지시하는 곳으로 가더니,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정옥이는 갑자기 큰소리로 창세기를 읽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몸에서 쿡, 쿡 땀내가 찔려 왔다. 그녀는 누렇게 땀에 젖은 런닝샤쓰를, 그나마 여기저기 대강 실로 훔쳐매어 입고 어깨를 우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이 며칠 사이 눈에 뜨이게 홀쭉해진 것 같았다. 「번제(燔祭)를 드리러 갈 때, 아브라함이 그랬쟎어……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응? 그 말이……나는 가슴에 맺혀, 남아있을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응?…… 차라리 나도 한 마리 나귀나 됐을 것을……」 정옥이는 더듬더듬 말하였다. 「너 아브라함 알지?」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말이야. 백 살이나 됐는데도 하나님의 은총으로 그 아내가 아흔 살에…… 아들을 낳았어. 알지? 응?」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불그스름한 열이 있었다. … 중략 …
1971년 전북대학교에서 주는 제 16회 교대 학예상 소설 부문에 단편 「貞玉이」가 뽑혔다. 이 작품은 12월 31일자 전북대학신문에 실렸고 1980년 5월 한국문학에 발표했다.
住所_최명희
아직까지 출처가 분명히 밝혀지지 않은 채 유족 소장본만이 전하는 “住所”는 1983년 이전 발표된 것만이 작가에 의해서 확인되었을 뿐이다. 최명희문학관 김병용 실장은 자신의 학위 논문을 통해 이 작품이 ” 「주소」는 “전라도 본적”의 뼈저린 아픔을 언급한 바 있으며, 서사의 배경이 서울이라는 대도시 외곽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1974년, 보성여고 전근에 따른 서울 이주 직후를 배경으로 쓰여진 작품”이라며, 여성지 별책 부록 형태로 제작되었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었다. <출처 미상>
귀뚜라미는 점 점 점 내장(內臟)이 물 속 같이 맑아지고, 드디어는 가을이 끝나면서 그 형체도 벗어버리는가. ―마침내 깊어 가는 이 가을에 잠 못 이루는 밤이 많게 하시고, 어느 해 가을보다도 많이 괴로와 하게 하시고 많이 울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의 목숨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 이리 저리 헤매이며 길을 잃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미 그것을 지을 수가 없읍니다… 지금 홀로 있는 사람은 오래오래 그러할 것입니다. 때때로 음울한 습기는 회색을 축축하게 머금고 창문 곁에서 서성거렸다. 그리고 그럴 때면 누군가가, 눈이 내릴 것이라는 소문을 전하였다. 나는 밤이 이슥하여 깊어지도록, 혹 강설(降雪)의 발짝 소리가 지붕 위를 지나지 않나 하여 잠을 못 이루었다. … 중략 …
출처미상
袂別_최명희
「몌별」은 대만에서 한국으로 유학 온 남학생인 그와 한국인 정희의 만남을 통해 존재의 소통문제를 다룬 이야기.
그는 오른손을 공중으로 들어올린다. 그러고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이윽고 주먹을 쥐는 시늉으로 나머지 손가락들을 접으면서 검지만을 남겨 놓는다. 그 검지손가락은 붓대처럼 날렵하였다. 미동도 하지 않는 흰 손 끝은 어쩌면 지금 막 붓 끝에 먹물을 빨아들이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공중에 뜬 채로 한동안 그렇게 조용히 머물러 있었다. 그지없이 맑게 개어 새파랗게 깊은 하늘은 그대로 흥건한 벼룻물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허공으로 들어올린 마른 모필의 갈피를 얼마든지 적셔 주고도 남을 것 같았다. 어느새 그의 흰 손등으로 스며든 물빛이 푸르게 얼비친다. 그는 그대로 하늘을 보고 있었다. 수관(水管)처럼 투명한 붓대의 끄트머리 손톱 너머로는 어디라고 할 수 없는 먼 곳으로 물고기만한 비행기 한 대가 아득하게 사라지는 중이었다. 눈물이 돌게 맑은 하늘이어서 그런가. 비행기는 하늘 저쪽이 아니라 아득한 가슴의 밑바닥으로 잦아든다. 순간 티눈이 마치는 듯한 아픔이 느껴진다. 이다지 투명한 가을 햇빛을 받으며 반짝이는 점이 되어 멀어진 비행기는 어찌 보면 잠깐 비친 낮별인가 싶기도 했다. 이제 마지막 은빛마저 스러져버린 공중에, 素 라고, 그는 드디어 글자를 쓰기 시작한다. 한 획 한 획을 그을 때마다 잠깐씩 손을 멈추던 붓 끝은 신중하게 다음 글자로 옮겨진다. 글자가 허공에 음각(陰刻)된다. 손가락 끝이 각도(刻刀)처럼 날카로워진다. 絹 하얀 비단. “아름다운 이름이로군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낮은 탄식이 어린다. 그의 손이 빈 손짓으로 허공의 글자를 지운다. 그녀의 말도 따라서 지워진다. … 중략 …
단편 「袂別」과 쓰러지는 빛이 『우리 시대의 한국문학』(계몽사) 25권
이웃집 여자_최명희
“죄송합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다 치워드리구 가야 하는데요. 생각보담 일이 더디어졌 구만요.” 지금 막 일을 마치고는 길다란 나무 걸상을 한쪽으로 밀면서, 세 사람 중에서 그래도 제일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가 입속말로 중얼거렸다. 말하는 투로 보아 그저 지나가는 인사로 그렇게 한마디 챙기는 것 같았다. “오늘은 저물었응게요, 기양 두셨다가 니알이라도 여그 아파토서 일허는 아주머이들한티 좀 해도라고 그러시면 되아요. 이께잇 거 머 내다놓기만 허먼 그 사람들이 다 알어서 헝게요.” 풀통을 화장실 세면대에 구겨박아 씻어내고 있던 꺼북하게 생긴 총각이 옆에서 거들었다. 그는 아마도 이제 일을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아까부터도 도배지에 풀을 바른다거나 장판의 숫자를 세는 일 같은 것을 거들더니 지금도 이것저것에 묻어있는 풀을 씻어내느라고 바빴다 “후딱후딱 해. 배고파 죽겠네. 집에까지 또 한시간이나 꼬박 가고 나면 언제 한숨 눈 붙 일 새두 없겠구만.” 좀 성질이 급해 보이는 가운데 남자가 손톱 끝에까지 타들어간 담배를 다시 한 모금 빨면서 눈썹을 찡그린다. “재떨이 없습니까? ” 그는 찡그린채로 물었다. 그것이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 데나 버리기가 미안한지 거실을 한 바퀴 휘둘러보던 그 남자는 유리창 바깥으로 담배를 던져버린다. 벌써 바깥은 캄캄하게 어두워져 불빛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 중략 …
1983년 단편 「이웃집 여자」가 서울신문사에서 나온 『정예여류작가 10인선 신작집』, 『일곱 무지개 빛깔같은』에 실렸다.
쓰러지는 빛_최명희
집을 팔고 난 뒤, 아직 이사를 나가지 않은 시점에서 새 집주인이 이사를 와서, 며칠 간 동숙(同宿)하게 된 정황이 그려져 있는 이 작품은, 자신이 태어나 20여 년 간 살아오면서 어느새 자신의 한 부분처럼 느끼게 된 ‘집’과 이별하게 되었던, 그것도 소중히 아끼고 싶었던 마지막 며칠이 타인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던 체험을, 다소의 상상력을 곁들여 작품화한 것으로 자서전적 성격이 강하다.
“남자는 하루 종일 마당에서 서성거렸다. 그것은 허름한 잠옷 바람으로 한 손을 허리 춤에 찌른채, 한 손으로는 가끔씩 부스스한 상고머리를 뒤쪽으로 쓸어 넘기며, 발로 울타리를 툭툭 차 보기도 하고, 방안을 기웃 들여다 보기도 했다. 그리고는 크으음- 목에 걸린 가래를 돋구어 퉤하고 꽃밭에 뱉기도 했다. 아직 채 날이 밝지 않은 이른 새벽 선 잠이 깨어 습관대로 창문을 열어 젖혔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남향(南向)진 창문 앞에 오동나무가 넓은 잎사귀를 무심하게 떨구고 있는 바로 그 나무 둥치에 한 손을 짚고 서서 이를 닦고 있는 남자를 발견한 때문이었다. 그는 온 입안 가득히 치약 거품을 허옇게 문채로 이쪽 창문을 힐끗 바라보았다. 나는 황급히 커튼을 닫아버리며 「어머니, 저 남자 누구예요?」하고 물었다. 「누구겠니… 이사 온 사람이다.」 어머니는 힘없는 목소리로 건성 대답하며, 여기 저기 방안 가득 쓰레기더미처럼 쌓여진 짐꾸러미들을 한 쪽으로 간추리고만 계셨다. 「왜 좀 더 자지 않고 일어났니…?」 「다 잤어요…」부엌에서 달가락 달가락 소리가 들려왔다. 날마나 그렇게 아직 어둠이 채 물러가지 않고 그물처럼 빛과 섞이는 새벽시간에 나는 이불 속에서 눈을 떴다. … 중략 …
1980년 1월 1일 중앙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단편 「쓰러지는 빛」으로 당선됐다.
까치까치 설날은_최명희
그는 마음을 진정시켜 보려고 양손을 뻗쳐 강대상의 귀퉁이를 움켜 잡았다. 그러나 순간 얼음 덩어리를 짚은 것 같은 섬뜩한 냉기가 놀라 그만 손가락을 오그리고 만다. 이상하게도 오늘은 무엇이든지, 눈에 보이는 것은 보이는 대로 살에 닿는 것은 닿는 대로, 냉랭하고 차갑게 느껴진다. 그리고 귀에 들리는 것은 또한 들리는 대로 오스스 소름이 돋게 적막하였다. 때 맞추어 언덕 비탈을 후려치는, 바람의 회초리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예배당의 천막 위로 떨어진다. 베폭을 찢는 것 같은 소리였다. 그 소리는 그의 가슴 복판에 예리한 금을 긋는다. ―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렇지만 눈을 다시 뜨기가 두려웠다. 아까보다 더욱 휑뎅그렁하게 느껴질 예배당의 허전한 빈 자리를 차마 마주 바라 볼 용기가 나지 않는 까닭이었다. 하기야 ‘예배당’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맨 땅 위에 허름한 천막 하나를 기둥삼고 지붕삼아 두르고 있는 이 움막은 누가 지나가다가 보아도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는 형국을 하고 있었다. 더우기나 다른 보통 때였다면 벌써 예배가 시작되고도 남았을 시간이 겨웁도록 아직 이 천막 교회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기도나 찬송의 소리가 울리지 않는 것은 그만 두고라도 누구 사람이 있는 것 같은 기척조차도 느껴지지 않아서 얼핏 오늘은 평일(平日)인가도 싶을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뒤집혀 날아가 버릴 것처럼 위태로운 천막속에는 오직 한사람 서(徐) 목사만이 얼어 붙은 강대상을 붙들고 무겁게 눈을 내리감은채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으니, 옷자락 스치는 소리도 날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는 날짜를 잘못짚은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럴 수가 없는 일이 아닌가. 거기다가 오늘은 새해의 첫날이었다. 그리고 은혜스럽게도 그 첫날이 바로 주일(主日)이었던 것이다. …
중략 …
단편 「까치 까치 설날」은 신영사에서 나온 『이들을 보소서』에 실려있다.
잊혀지지 않는 일_최명희
또 읍내 장에서 돌아오던 장꾼들 중에 담이 좀 크다는 사람이 하루는 불을 켜 들고 늦바위에게 슬슬 다가갔더니 어느 새 바위는 벌떡 일어나 저 쪽 기슭에 가서 다시 쪼그리고 앉더라는 것이었다. 국민학교 5학년이던 나는 그 말을 듣고 무서워서 며칠은 억지로 학교에 가곤했다. 아무리 비가 와도 누나랑 같이 기어히 학교에 가야했다. 누나는 육학년이었다. 만약 아픈 날 외에 학교에 가기 싫다고 안 갔다가는 아버지에게 회초리로 맞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 산마을의 많은 아이들 중 국민학교를 제대로 졸업한 사람은 없었다. 모두 오학년 쯤 다니다가는 머슴으로 가거나 나무꾼이 되었다. … 중략 …
1964년 5월 고등학교 2학년이던 이 해에 동국대학교 주최 제 2회 전국고교생 문학콩쿠르에서 「잊혀지지 않는 일」로 소설부 장원으로 입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