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목
그리고 최명희
▣ 작가 최명희와 소설 <혼불>을 떠올린 아름다운 분들의 애틋한 글이에요.
(유화웅) 혼례식이 달라지고 있어요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3-02-25 13:43
조회
452
○ 출처: 안양광역신문사 2023-02-16 <혼례식이 달라지고 있어요>
○ 글쓴이: 유화웅 (시인 수필가/예닮글로벌학교 교장)
○ 링크: http://anyangnews.net/index.do?menu_id=00000535&menu_link=/front/news/icmsNews/view.do&&articleId=ARTICLE_00018841
“‘부서언재애배애(婦先再拜 부선재배)’
혼례의식의 순서를 적은 홀기(笏記)를 두 손으로 받들어 정중하게 펼쳐 들고 예를 진행하는 허근(許槿)의 목소리는 막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허근은 신부의 종조부이다.
신부가 먼저 두 번 절하라는 말이 꼬리를 끌며 마당에 울리자, 신부의 양쪽에 서있던 수모(手母 전통혼례에서 신부에게 단장을 하여 주고 예절을 거행하게 받들어 주는 여자)가 신부를 부축한다.
신부는 팔을 높이어 한삼으로 얼굴을 가린다(중략)
신부는 다홍치마를 동산처럼 부풀리며 재배를 하고 일어선다. 한삼에 가리워졌던 얼굴이 드러나자, 흰 이마의 한 가운데 곤지의 선명한 붉은 빛이 매화잠(매화를 새긴 비녀)의 푸른 잠두(簪頭 비녀의 머리부분)와 그 빛깔이 부딪치면서 그네의 얼굴을 차갑고 단단하게 비쳐 주었다. (중략)
사모(紗帽)를 쓰고, 자색 단령(團領 깃을 둥글게 만든 공복(公服)의 한가지)을 입은 신랑은 소년이었다. 몸가짐은 의젓하지만 자그마한 체구였고, 얼굴빛은 발그레 분홍물이 돌아, 귀밑에서 볼을 타고 턱을 돌아 목으로 훌러내리는 여린 선이 보송보송 복숭아털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는 시키는 대로 나붓이 꿇어 앉으며 신부에게 일배(一拜)를 한다.
마당을 가득 채운 웃음소리와 덕담, 귓속말들, 옷자락에 빼어들 만큼 갖가지 음식 냄새와 청, 홍, 오색의 휘황함에 짓눌리기 라도 한 것 일까. 아니면 모든 것이 아직은 어색한 탓일까. 나이 어린 신랑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최명희씨의 소설 ‘혼불’에 나오는 초례청(醮禮廳)의 모습입니다.
우리나라 혼례는 신부의 집에 초례청을 차려놓고 혼례를 치렀습니다. 집안 어른이나 동네의 덕망있는 어른이 집례를 하였고 주례사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동방화촉을 밝히고 ‘백년해로’의 긴 여정으로 접어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혼인예식의 장면은 지금은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지금은 결혼중매업체가 성업을 이루고 결혼식도 산업화가 되어 전문업체가 결혼식을 주관합니다. 혼인(婚姻), 혼례(婚禮)라는 단어도 법률상 용어로 사용되고, 지금은 ‘결혼(結婚)’이란 단어가 일반화 되었습니다. ‘결혼’이란 말이 사용된 것은 일본의 영향이고 유길준의 서유견문(1895), 구연학의 설중매(1908), 대한제국 관보 제4367호(1908)에 나타난 것으로 보면 그 전에는 쓰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소위 서양식 혼례 양식이 우리 생활에 자리 잡으면서 결혼식은 신랑, 신부의 집이 아닌 전문 결혼식장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식장의 중앙에 주례자가 서있고 신랑이 입장하고 다음으로 신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신부가 음악에 맞추어 입장을 합니다.
주례자가 맞절을 하라는 명령에 따라 이미 구면인데도 처음 만난 듯 상견례를 합니다. 그리고 주례자가 혼인 서약서를 낭독하면 신랑, 신부가 ‘예’ 라는 대답으로 백년 가약의 결혼이 성사가 됩니다. 주례자는 신랑, 신부에게 주옥같은 말로 결혼생활을 잘하라고 당부를 합니다. 그리고 축가 순서가 있고 그다음은 신랑 신부 부모에게 인사를 시키고 행진하는 순서로 예식은 끝이 납니다. 근래들어서는 결혼식 풍속도도 달라져 주례자없이 신랑 신부가 단위에 올라가서 각기 써온 사랑의 고백을 담은 글을 읽고 교환하고 하객에게 인사하는 것으로 결혼식 ‘끝’하는 모습도 있고, 신랑이 예식 중에 신부를 향해 무릎을 꿇고 신랑이 노래 한 곡 부르며 사랑의 고백을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또 신랑, 신부의 부모가 주례자가 없는 단상에 올라가 신랑, 신부에게 주는 편지를 읽고 신랑, 신부를 번갈아 끌어안고 부모의 애정을 표시하고 식을 끝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결혼이 이제는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이 되면서 예전에는 결혼을 하지 않은 적령기의 남녀를 ‘미혼(未婚)’이라 했는데 이젠 결혼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개념의 ‘비혼(非婚)’이란 신조어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결혼은 하되 계약을 맺어 ‘백년가약’이 ‘일년가약’이 있는가하면, 수십년 살다가 이혼상태는 아니며 서로 자유롭게 살며 혼인상태를 끝냈다고 ‘졸혼(卒婚)’ 생활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사람사는 것이 정답이 없으니 종래의 결혼 가치관으로 고집할수도 없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 글쓴이: 유화웅 (시인 수필가/예닮글로벌학교 교장)
○ 링크: http://anyangnews.net/index.do?menu_id=00000535&menu_link=/front/news/icmsNews/view.do&&articleId=ARTICLE_00018841
“‘부서언재애배애(婦先再拜 부선재배)’
혼례의식의 순서를 적은 홀기(笏記)를 두 손으로 받들어 정중하게 펼쳐 들고 예를 진행하는 허근(許槿)의 목소리는 막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허근은 신부의 종조부이다.
신부가 먼저 두 번 절하라는 말이 꼬리를 끌며 마당에 울리자, 신부의 양쪽에 서있던 수모(手母 전통혼례에서 신부에게 단장을 하여 주고 예절을 거행하게 받들어 주는 여자)가 신부를 부축한다.
신부는 팔을 높이어 한삼으로 얼굴을 가린다(중략)
신부는 다홍치마를 동산처럼 부풀리며 재배를 하고 일어선다. 한삼에 가리워졌던 얼굴이 드러나자, 흰 이마의 한 가운데 곤지의 선명한 붉은 빛이 매화잠(매화를 새긴 비녀)의 푸른 잠두(簪頭 비녀의 머리부분)와 그 빛깔이 부딪치면서 그네의 얼굴을 차갑고 단단하게 비쳐 주었다. (중략)
사모(紗帽)를 쓰고, 자색 단령(團領 깃을 둥글게 만든 공복(公服)의 한가지)을 입은 신랑은 소년이었다. 몸가짐은 의젓하지만 자그마한 체구였고, 얼굴빛은 발그레 분홍물이 돌아, 귀밑에서 볼을 타고 턱을 돌아 목으로 훌러내리는 여린 선이 보송보송 복숭아털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는 시키는 대로 나붓이 꿇어 앉으며 신부에게 일배(一拜)를 한다.
마당을 가득 채운 웃음소리와 덕담, 귓속말들, 옷자락에 빼어들 만큼 갖가지 음식 냄새와 청, 홍, 오색의 휘황함에 짓눌리기 라도 한 것 일까. 아니면 모든 것이 아직은 어색한 탓일까. 나이 어린 신랑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최명희씨의 소설 ‘혼불’에 나오는 초례청(醮禮廳)의 모습입니다.
우리나라 혼례는 신부의 집에 초례청을 차려놓고 혼례를 치렀습니다. 집안 어른이나 동네의 덕망있는 어른이 집례를 하였고 주례사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동방화촉을 밝히고 ‘백년해로’의 긴 여정으로 접어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혼인예식의 장면은 지금은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지금은 결혼중매업체가 성업을 이루고 결혼식도 산업화가 되어 전문업체가 결혼식을 주관합니다. 혼인(婚姻), 혼례(婚禮)라는 단어도 법률상 용어로 사용되고, 지금은 ‘결혼(結婚)’이란 단어가 일반화 되었습니다. ‘결혼’이란 말이 사용된 것은 일본의 영향이고 유길준의 서유견문(1895), 구연학의 설중매(1908), 대한제국 관보 제4367호(1908)에 나타난 것으로 보면 그 전에는 쓰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소위 서양식 혼례 양식이 우리 생활에 자리 잡으면서 결혼식은 신랑, 신부의 집이 아닌 전문 결혼식장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식장의 중앙에 주례자가 서있고 신랑이 입장하고 다음으로 신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신부가 음악에 맞추어 입장을 합니다.
주례자가 맞절을 하라는 명령에 따라 이미 구면인데도 처음 만난 듯 상견례를 합니다. 그리고 주례자가 혼인 서약서를 낭독하면 신랑, 신부가 ‘예’ 라는 대답으로 백년 가약의 결혼이 성사가 됩니다. 주례자는 신랑, 신부에게 주옥같은 말로 결혼생활을 잘하라고 당부를 합니다. 그리고 축가 순서가 있고 그다음은 신랑 신부 부모에게 인사를 시키고 행진하는 순서로 예식은 끝이 납니다. 근래들어서는 결혼식 풍속도도 달라져 주례자없이 신랑 신부가 단위에 올라가서 각기 써온 사랑의 고백을 담은 글을 읽고 교환하고 하객에게 인사하는 것으로 결혼식 ‘끝’하는 모습도 있고, 신랑이 예식 중에 신부를 향해 무릎을 꿇고 신랑이 노래 한 곡 부르며 사랑의 고백을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또 신랑, 신부의 부모가 주례자가 없는 단상에 올라가 신랑, 신부에게 주는 편지를 읽고 신랑, 신부를 번갈아 끌어안고 부모의 애정을 표시하고 식을 끝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결혼이 이제는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이 되면서 예전에는 결혼을 하지 않은 적령기의 남녀를 ‘미혼(未婚)’이라 했는데 이젠 결혼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개념의 ‘비혼(非婚)’이란 신조어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결혼은 하되 계약을 맺어 ‘백년가약’이 ‘일년가약’이 있는가하면, 수십년 살다가 이혼상태는 아니며 서로 자유롭게 살며 혼인상태를 끝냈다고 ‘졸혼(卒婚)’ 생활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사람사는 것이 정답이 없으니 종래의 결혼 가치관으로 고집할수도 없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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