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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낮은 처마가 이마를 맞대듯, 어깨를 겨누듯 잇대거나 포개진 정겨운 골목. 담장 대신 기와 능선이 이어지는 전주한옥마을. 전주시가 1999년부터 예향의 상징처럼 가꿔온 전통문화특구인 이곳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경기전과 사시사철 아이들이 뛰노는 전주천을 포함한 교동,풍남동 일대다.
한민족의 삶과 우리말에 깃들인 얼의 무늬를 소설 『혼불』에 그려낸 소설가 최명희(1947-1998)의 생가터와 그의 문학 혼이 올곧게 녹아 있는 최명희문학관이 있다. 그리고 "최명희길"도 있다. 동학혁명기념관에서 경기전 뒷담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의 한 중간에 있는 생가터와, 그곳에서 최명희문학관을 잇는 "ㄴ"자 형 골목이 "최명희길"이다. 생가터 표지석을 모서리에 두고, 위로 난 길의 끝에 동학혁명기념관이 있고, 옆으로 난 길의 끝에 최명희문학관이 있는 셈이다.
『혼불』을 읽으며 걸으면 서너 쪽도 넘기지 못할 만큼 짧고 좁다. "ㄴ"자로 꺾이지도 않았다면 얼마나 밋밋하고 서운했을까. "최명희길"은 동완산동 "투구봉길", 인후동 "팽나무길", 서노송동 "개나리길", 서서학동 "소나무길", 동완산동 "매화길", 진북동 "느티나무길"과 "백합길", 금암동 "매화길"과 "뽕나무길" 등 전주시내 도로들이 살가운 이름으로 바뀌던 2001년, 기린로에서 전동성당에 이르는 "경기전길"이 태조 이성계와 얽힌 역사를 감안해 "태조로"로 단장되던 그 때부터 시나브로 전주 사람들의 언저리에서 불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 명칭은 그 곳 주민이나 행인들에 의해 자연스레 붙여진 것이 아니다. 1999년부터 간선도로는 물론 골목길까지 역사성과 특성을 담아 부르기 편하고 친근감이 있는 새이름을 부여했던 전주시의 사업으로 탄생했다.
하나 더 서운한 것은 당초 최명희의 이름을 붙인 길이, 풍남동 동부시장에서 남천교를 잇는 꽤 긴 길이었으나, 어느 날 갑자기 크게 줄었다는 사실. 고무줄을 늘렸다가 놓아버린 것처럼 맥없고, 아프다. 각설. 풍남동과 경원동, 그리고 화원동…. 생가터 표지석이 있는 이곳을 최명희는 무척 아꼈다.
1997년 11월 8일 국립국어연구원에서 "『혼불』과 국어사전"을 주제로 강연을 열었던 최명희는 그곳을 이렇게 자랑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전라북도 전주시 화원동이라고 하는, 지금은 "경원동"이라고 이름이 바뀐 그런 동네입니다.
(중략) 전 이상하게 전라북도 전주시 화원동 몇 번지라고 했을 때, 그 어린 마음에도 "화원동"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제 맘에 좋아서, 굉장히, 제가 뭔지 아름다운 동네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그 "화원"이라고 하는 그 음률이, 그 음색이 주는 울림이 저로 하여금 굉장히, 제 마음에 화사한 꽃밭 하나를 지니고 사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주곤 했어요." 작가의 개성이나 인격은 문체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것. 어휘를 선택하고 배열하는 방식에서도 작가 나름의 진솔한 면모는 드러난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골목길은 유달리 쓸쓸하다.
단편소설 「주소」에서 서울로 갓 전근을 간 "여(女)선생"은 퇴근하고 자취집으로 오며 "골목을 들어설 때부터 마음은 무겁게 두근거리고, 대문을 열고 내 방까지 오는 짧은 몇 발짝이 얼마나 조마조마한지, 금방이라도 "이보시라요." 하는 주인댁의 목소리가 뒷덜미를 낚아챌 것만 같아 저 혼자 소스라쳤다"고 고백한다.
그러다 집으로 가는 골목을 그냥 지나치면서 "두벅두벅" 걷기도 한다. 인적이 끊긴 골목에서 구두소리는 유난히 크다. 최명희는 그것을 오히려 "마을이 숨을 죽이고 있는 탓"이라고 했다.
단편소설 「몌별」의 "그녀"는 더 쓸쓸하고 가엽다. "내가 여기에 와 있는데요. 이렇게 당신의 방문 앞에 담벼락을 두드리며 울고 있는데요. 당신을 부르고 있는데요. 당신은 보이지 않아요. 어둠 속에 있어요. 불러도 들리지 않을 곳에서, 당신은 어찌하여 나를 이 어둠 속의 골목에 서 있게 하시는가요.
나를 보아요. 내게 대답해 주어요." 하며 담에 이마를 기대고 숨을 죽인다. 몸속에 갇힌 울음이 굽이를 치며 솟구치기도 했을 터. 서민생활 현장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묘사하는 최명희의 풍부한 언어 구사 능력은 고향 전주의 이 골목 저 골목, 깊숙한 골목쟁이까지 빠짐없이 묘사돼 있다.
대개 한벽당에서 다가봉까지 전주천을 옆구리에 낀 동네, 한옥마을과 다가동, 완산동이다. "다가산 기슭에 엎드린 동네"에선 『혼불』의 강모와 오유끼가 산다. 강모가 남원 본가에라도 가는 날이면 오유끼는 그 골목 어귀에서 강모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갓을 쓴 전등이 희미하게 비추는 그곳에서 잠시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면, 하늘에서는 너풀너풀 눈송이가 내리고, 그 서늘한 불빛 아래 눈송이는 꽃잎처럼 하염없이 졌다. 너풀너풀 내리던 눈송이들은 점점 바람을 타고 흩날리면서 길바닥에 쌓이고……. 발자국 소리에 놀란, 건너편 집의 개가 귀를 세우며 짖는 소리가 커겅, 컹, 컹, 컹, 터져 나온다. 뒤따라 몇 집에서 개가 짖는다.
"오유끼". 누군가 이름을 불렀다. 눈 내리는 빈 골목에 목소리가 울린다. 미완성 장편소설 「제망매가」에서는 전주천, 매곡교를 건너면 만나는 골목이 도처에서 꿈틀댄다. 노점상을 단속하는 순사들의 호각소리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달리던 아낙네들의 숨터다. 또 "아편골목"이라고도 불리는 "개골목" 양쪽으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붉은 녹이 슬고, 구겨지기도 한 여인숙의 양철 간판들. 최명희는 그 골목에서도 낯익은 향수를 찾아냈다. "그 골목에 들어서던 어느 날 저녁, 쑥국 끓이는 향긋하고 상큼한 냄새"가 넘어와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는 맛있는 상상이다. 최명희는 20여 년 간 살았던 집을 떠나면서 느낀 감상을 옮긴 단편소설 「쓰러지는 빛」(1980,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품). 자전적 성격이 강한 이 작품에는 미궁과 같았던 완산동 골목길의 추억이 담겨 있다.
동학혁명기념관 → 경기전 뒷담 → 이어지는 좁은 길 → 한 중간에 생가터 비 → ‘ㄴ’자형 골목이 최명희 길 →
길 끝 최명희문학관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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