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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정동칼럼
최명희
1. 만년필을 쓰는 기쁨/최명희(정동칼럼)
[경향신문]1995-05-20 05면 정치,해설 칼럼,논단 2085자

2. 예루살렘의 치통/최명희(정동칼럼)
[경향신문]1995-04-29 05면 정치,해설 칼럼,논단 1943자

3. 쓰레기가 별이 되어/최명희(정동칼럼)
[경향신문]1995-04-15 05면 정치,해설 칼럼,논단 2066자
4. 우리말은 우리혼/최명희(정동칼럼)
[경향신문]1995-03-25 05면 정치.해설 칼럼,논단 1994자

5. 「쪽박문화」도 영어오염/최명희(정동칼럼)
[경향신문]1995-03-11 05면 정치,해설 칼럼,논단 2047자

6. 도근점을 아십니까/최명희(정동칼럼)
[경향신문]1995-02-25 05면 정치.해설 칼럼,논단 1891자

7. "메이커 있는 작가예요?"/최명희(정동칼럼)
[경향신문]1995-02-11 05면 정치.해설 칼럼,논단 2078자


만년필을 쓰는 기쁨/최명희(정동칼럼)


[경향신문]1995-05-20 05면 2085자 정치.해설 컬럼,논단

필기도구 변화거듭 저 아득한 옛날 인류 최초의 필기도구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깨어진 돌조각이나 뾰족한 나무 꼬챙이였을 것이다.
그 날카로운 자연물 촉으로 바위 암벽과 부드러운 흙바닥 위에다 무엇인가 새기고 그리던 원시시대로부터, 손가락 끝 느낌도 경쾌한 컴퓨터 자판에 이르기까지, 길고도 긴 세월 동안 이 필기 도구는 오만 가지 변화를 거듭했을 터인데. 새의 깃을 깎아서 만들어 쓰던 서양의 깃펜이나, 동양의 선비들이 문방사보로 아끼며 애지중지하던 붓들이 그 중 최근의 고전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제는 만연필까지도 아주 고색창연한 필기구가 되어 버린 지 이미 오래다.
『아직도 만년필로 쓰세요?』
시인들조차 워드 프로세서를 두드려 작업하는 마당에 이게 웬 일이냐고 놀라며 묻는 사람이 많지만, 그래, 나는 「아직도」 만년필로 원고를 쓴다. 그리고 앞으로도 한동안은 만년필을 쓸 것 같다. 나는 만년필을 좋아한다.
먼 길을 떠나는 말에게 물을 먹이듯 일을 시작하려고 만년필에 잉크를 가득 넣을 때. 그 원기둥의 혈관에 차오르는 해갈의 신선함.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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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치통/최명희(정동칼럼)

[경향신문]1995-04-29 05면 1943자 정치.해설 컬럼,논단

"나와 상관없는 일"지금으로부터 약 2천년 전,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이라 하는 곳에 한 남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몹시 이가 나빠 늘 치통으로 고생을 했는데 하루는 도저히 더 견딜 수가 없어 두 볼을 싸쥐고,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날따라 거리는 침울하게 웅성웅성 붐비었다. 마치 온 성안의 사람들이 모두 바깥으로 나오기나 한 것처럼. 발 디딜 틈조차 없이 그들은 수군거리며 혹은 야유하며 혹은 눈물을 흘리며 행렬을 이루어 어디론가 밀려 가고 있었다.
하늘마저 빛을 거두고 수상한 어둠이 온 땅에 임하여 불길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남자는 순간 궁금했지만 쿡, 어금니가 쑤시는 아픔에 그만 자지러져 자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그들에게 더 이상 헛눈을 팔지 않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이때 갑자기 어느 누가 커다랗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만, 휘장이 찢어지고 땅이 진동하며 언덕 위에 바위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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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가 별이 되어/최명희(정동칼럼)

[경향신문]1995-04-15 05 면 2066 자

광고지도 못버리는 세대「소비가 미덕」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가슴이 다 두근거렸다. 설레서가 아니라 무슨 그런 죄로 갈 말이 있는가 해서였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아껴 쓰라」고 배운 세대여서 그럴까.
다 보고 뜯어낸 달력 종이의 뒷면이나 신문에 끼여 들어오는 광고지의 뒷면, 그리고 날마다 쌓이는 원고용지 파지의 뒷면들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모은다. 그리고 아직 쓰여지지 않은 그 뒷면들이 너무나 희고 깨끗해서 나는 항상 놀란다.
이미 쓰여진 것과 꼭같은 면적이 또 남아 있는 종이의 뒷면, 그것은 마치 수줍은 미지와도 같아서 손 대기 아까운 마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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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은 우리혼/최명희(정동칼럼)

[경향신문]1995-03-25 05 면 1994 자

모질게 버텨온 역사다시 또 연변 이야기.
연길에 머무는 동안 카자흐스탄 공화국 수도 알마아타에서 온 조선족연극인 세 분을 만났다. 모두 연세가 높은 이들은 1932년 9월9일 러시아령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시 신한촌에서 창립돼 이제 예순돌이 넘은 「국립 조선극장」의 오블라디슬라프 극장장과 김빅토르 부극장장, 그리고 고희를 훌쩍 넘긴 문학부장 최국인선생이었다.
『남의 나라 영토에 이민족의 극장이 이토록 오랜 명맥을 유지하면서 제 나라 말로 연극을 해온 역사는 해외 어디에도 없을 뿐 아니라 조선의 남북에도 역시 이만큼 오래된 극장은 없다고 합니다』 오극장장은 말했다.
조국이 일제에 무참히 강점당해 신음하고 있던 30년대, 조선극장에서는 타향만리 얼어붙은 소련땅 무대위에 연극 「춘향전」과 「심청전」, 그리고 「홍범도」며 「홍길동」을 올려 고향의 젖줄을 잃어버린채 떠도는 유랑민 동포들에게 보여주었다.
『우리 극장은 그리 단순한 극장이 아니었습니다. 극장보다 큰 것이며 극장 이상의 것이었지요』 무대마다 뜨거운 눈물이 넘쳐 흘러 관객과 배우를 흠씬 젖게 했다. 그러던 37년, 스탈린이 조선인들을 강제 이주.분산시키라고 명령하여 하루아침에 제 뜻과는 상관없이 저 살던 곳에서 산지 사방동토나 오지로 쫓겨나 흩어진 동포들이 무려 18만명이나 됐으니 그 비참한 상황과 형국을 무슨 말로 다 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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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박문화」도 영어오염/최명희(정동칼럼)

[경향신문]1995-03-11 05 면 2047 자

연변의 민족혼 충격지난 80년부터 쓰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만 15년째 쓰고 있는 소설 「혼불」의 주인공이, 일제시대 중국의 동북지방 만주로 떠나간 뒤, 내가 직접 그곳에 가 본 일이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 그 발자취를 좇지 못하여 몹시 안타깝던중, 뜻밖에도 벼르던 기회가 찾아와 나는 홀로 괴나리봇짐을 둘러메고 먼 길을 떠났다.
그리하여 64일간.
북경과 심양에서 우선 필요한 취재를 하고, 길림성의 조선족 자치주인 연변지구 연길시에 이르렀을 때. 마침 연변 사회과학원 문화예술연구소에서 학술발표회를 하고 있었다. 그때 한 무용인이 자기 논문을 발표하고나서 진지하게 맺은 말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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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근점을 아십니까/최명희(정동칼럼)

[경향신문]1995-02-25 05면 1891자 정치.해설 컬럼,논단

「도근점」은 지도의 근본으로 도면을 만들기 위한 뿌리가 되는 점인데, 이것은 평판 측량을 할 때, 필요한 면적의 삼각망 안에 기준측점이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 점에 따라 돌이나 말뚝을 박아 오랫동안 보존하여 두기도 한다.이에 따라서 지도를 작성하는 도근점의 위치는 우선 「도근측량」을 한 다음 측량학적인 계산과 수리와 삼각함수, 그리고 경․위도 좌표를 따라 정확하게 결정하므로 만일 표지가 없어진다 할지라도 언제나 얼마든지 다시 찾아낼수가 있다.
필요한 데마다 설치하는 이 점은 서울의 남산과 종각을 비롯하여 전국 각 지역에 수십만 개가 있으니 남의 집 골목 앞에도 배추밭에도 우리집 마당에도 그 점은 있는 것이다. 다만 그것들은 아직 발견되거나 쓰이지 않았을 뿐.
이것과 혼동하기 쉬운 것이 「도로원표」다. 원표는 거리 따위를 잴 때 근본이 되는 표 혹은 푯대로서 도로의 기준점, 즉 원점에 세우는 것이다.
거기서부터 모든 길의 거리를 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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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커 있는 작가예요?"/최명희(정동칼럼)

[경향신문]1995-02-11 05 면 2078 자

재능이 없는 사람은 고생을 많이 한다. 자신의 일필휘지를 믿지 않는 나는 항상 원고를 쓸때면 마감이 목에 찰 때까지 고치고, 덧쓰고, 지우느라고 여러날씩 잠을 못 이루기 일쑤다.며칠 전에도 역시 밤을 가득 새운 끝에 겨우 마무리한 글을 묶어들고 급히 택시를 탔는데 기사는 아주 젊은 사람이었다. 신세대 운전사인가. 목에는 굵은 금빛 사슬 목걸이를 여러 겹 감고 앙증스러운 팔찌까지 한 그에게 행선지를 말하고는 아무래도 한 번 더 원고를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 싶어 나는 부스럭부스럭 서류봉투 속에서 원고지 뭉치를 꺼냈다.
만년필까지 들고 원고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는 뒷좌석의 여자손님이 신기했던지 힐끗 돌아보던 그가 못 참겠다는 듯 『아줌마』하고 불렀다. 나는 엉겁결에 고개를 들었다. 『글 써요?』 왠지 무안해서 그냥 미소만 짓고 다시 눈을 떨구는데 그가 또 불렀다. 『아줌마』. 이번에는 좀 단호한 어조다. 『예?』 『소설 써요?』 아마 내 손에 들려 있는 백여장의 원고지가 두꺼워 보였는가 보다. 굳이 아니라고 할 것도 없어서 대답을 하자 그가 아예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더니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는 호기심이 많은 청년인 모양이었다.
제 자리로 돌아앉은 그가 드디어 세번째로 나를 불렀다. 미심쩍으면서도 궁금해 무엇인가 확인을 하려는 듯한 음성이었다. 『아줌마』. 그리고는 잠시 침묵했다.
『메이커어…있는 작가예요?』 느닷없는 그의 질문에 나는 너무나 깜짝 놀라 무어라고 더 말을 잇지 못한 채 당황했지만 이윽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중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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