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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8-11-15 14:45
[광주일보 문예매거진 예향 2018년 11호]문향(文香)이 숨쉬는 문학관을 찾아서⑬ <최명희 문학관>
 글쓴이 : 최명희문학관
조회 : 111  


예향 2018년 11호.jpg

 


매체: 광주일보 문예매거진 예향

날짜: 2018년 11호 102∼107쪽

제목: 문향(文香)이 숨쉬는 문학관을 찾아서⑬ <최명희 문학관>

출처:

쓴이: 박성천 기자


 

지극했던 모국어 사랑 혼으로 새긴 ‘혼불’

“제가 태어난 곳은 전라북도 전주시 화원동이라고 하는, 지금은 “경원동”이라고 이름이 바뀐 그런 동네입니다. (중략)전 이상하게 전라북도 전주시 화원동 몇 번지라고 했을 때, 그 어린 마음에도 “화원동”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제 맘에 좋아서, 굉장히, 제가 뭔지 아름다운 동네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그 “화원”이라고 하는 그 음률이, 그 음색이 주는 울림이 저로 하여금 굉장히, 제 마음에 화사한 꽃밭 하나를 지니고 사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주곤 했어요.(국립국어연구원 초청 ‘혼불’과 국어사전 강연1997.11.8.)
풍남동에 자리한 전주 한옥마을. 두말할 필요 없는 가장 전주다운 곳이다. 한국의 전통과 역사, 문화가 수백 여 채의 한옥과 함께 아름답게 응결돼 있는 가장 한국적이면서 가장 전라도덕인 감성이 깃든 곳이다.
한옥마을과 가잘 잘 어울리는 예술작가 바로 최명희 (1947 ~ 1998) 소설가다. 마을 한복판에 자리한 최명희문학관에는 ‘전주’의 정신과 ‘최명희’의 얼이 드리워져 있다. ‘천년이 지나도 이 천년이 지나도 또 천년이 가도, 끝끝내 그 이름 완산이라 부르며 꽃심 하나 깊은 자리 심어 놓은 땅’ 최명희 작가는 고향을 그렇게 생명력이 깃든 시어로 표현한 바 있다. 그녀의 전주에 대한 사랑, 전주에 대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땅의 예술가 중 자신의 고행을 이처럼 시적이면서도 생명력이 깃든 어로 표현한 이는 없을 것이다.
완연한 가을 날씨가 어디로든 발걸음을 재촉하게 하는 날이다. 파란 풍선이 두둥실 떠 있는 듯 하늘은 맑고 공기는 가볍다. 남도의 가을은 어디든 그 색이 푸르고 예쁘지만 전주에 비할 바는 아니다. 남도적인 서정과 기품이 어려 있어 호남제일문에 들어서면 마음부터 다잡게 된다. 전라도(全羅道)의 ‘전’이 전주에서 비롯된 것은 가장 전라도스러운 고장이라는 의미를 담뿍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 최명희의 모국어에 대한 사랑은 고향에 대한 지극한 사랑에서 비롯됐다. 순전하면서도 깊었다. 우리말과 사랑을 나누었던 작가가 바로 최명희다. 사랑하면 그립고 보고 싶다는데, 작가의 우리말에 대한 사랑이 그러했다. 그가 작품을 통해 생기를 불어넣었던 언어들을 보면 얼마나 갈고 닦고 애지중지했는지 알 수 있다. 한때 여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시절, 작가는 “모국 소녀들에게 모국어를 가르치는 국어 선생”이라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생의 의미와 가치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근원에 대한 그리움이 단긴 ‘혼불’

100인의 전문가들은 90년대 최고의 책으로 ‘혼불’을 선정한 바 있다. “한국문학이 이룬 가장 큰 성과”라는 상찬은 의례적인 주례사 비평과는 치원이 다른 평가다. 살로 장인의 각고의 땀과 혼이 서려 있다. 한 땀 한 땀 세공하듯 써내려간 글은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생생하면서도 고아하다. 많은 독지들은 이구동성으로 소설 ‘혼불’을 가리켜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판소리 가락처럼 유장한 흐름이 집약된 작품이라고 말한다.
‘혼불’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혼을 이루는 푸른 빛”이라는 뜻이다. 전라도 방언으로 ‘죽기 얼마 전에 몸에서 빠져나가며, 크기는 작은 밥그릇만 하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혼불을 ‘맑고 푸르스름한 빛을 띄는 종발만한 빛’으로 묘사했다.
“혼불”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없다. 그러나 실제로 혼불을 보았다는 사람은 많다. 그것은 우리 몸 안에 있는 불덩이로서 모양은 둥글고 크기는 종발만 한데 , 빛살 없는 푸른색이며, 그 사람이 제 수명을 다하고 죽을 때, 미리 그 몸에서 빠져나간다고 한다. (중략)이것이 미신이냐 실화냐 묻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떤 사람의 몸에 혼불이 있으면 산 것이고, 없으면 죽은 것이다. 그러니까 ‘혼불’은 목숨의 불, 정신의 불, 삶의 불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또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불의 불이기도 하다. 즉, 혼불은 존재의 핵이 되는 불꽃인 것이다. (‘소설 魂불을 통하여 본 한국인의 정서와 문학적 상상력, 그리고 작업 과정’ 중에서)
최명희가 ‘혼불’의 창작에 매달렸던 것은 “근원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외서 어디로 가는가? 죽고 난 후 우리의 영혼이 가는 곳은 어디인가? 이러한 질문의 토대는 바로 ‘혼불’에 닿아 있다.
그녀는 생전에 ‘아름다운 조각품을 볼 때, 그 아름답고 숭고한 의생을 우러르며 가슴 아파했고, 흐드러지게 피어 아름다운 동백꽃만큼 그 둥치에 낀 이끼의 생명력을 소중히 여겼다’고 고백한 바 있다.
사소한 것들은 결코 사소하게 보지 않았던 특유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무릇 예술가란 작고 하잘 것 없는 것들에 대해 애정 어린 눈길을 주는 존재하지만, 최명희의 눈길은 그런 일상의 시선과는 변별된다. 뭐랄까, 본질에 다가가려는 그녀만의 마음의 눈길이라 표현할 수 있다. 아마도 이 모든 것은 “언어는 정신의 지문(指紋)”이라는 작가관이 투영된 산물일 것이다. 작가는 “나의 넋이 찍히는 그 무늬를 어찌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라는 말로 대상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독락제(獨樂劑). ‘홀로 즐거움을 느끼는 집’이라는 뜻이다. 최명희문학관에 걸린 현판이다. 평생 홀로 창작에만 몰두했던 작가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말이다. 외로움을, 창작의 고통을 즐거움으로 승화한 이의 무애의 경지다. 문학관 현판 바로 아래에는 <오늘의 필록>이라는 작품 속 명언이 기록돼 있다.
“안해본 호강, 동티난다. 넘보지 말어. 사램이 호강보담 더 몬야 도리를 찾어야능 거이여, 도리”(‘혼불’4권 100쪽)
사람의 도리에 대한 단상이다. 호강보다, 성공보다, 물질의 부요보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마땅히 해야 할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작품 속의 말은 “뭣이 중헌디”라는 항간에 떠도는 유행어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작금의 세상은 도리에 앞서 호강이 우선순위가 됐으니 더 말해 무엇 하리. 도리를 말하려 하면 세상물정 모르는 촌스러운 사람이라 타박이나 듣지 않으면 다행이니

 

○“어둠은 결코 빛보다 어둡지 않다”

독락제(獨樂劑)라는 현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안으로 들어선다. 작가의 성정을 엿볼 수 있는 아담하면서도 깊이가 느껴지는, 결코 가볍지 않는 운치가 밀려든다. 전통의 감성을 살린 현대적인 구성이 편안하면서도 오래 머물고 싶은 인상을 준다.
내부는 한옥 구조로 돼 있어 익숙하게 다가온다. 남도의 정서와 옛 향기가 구석구석 돼 있어 익숙하게 다가온다. 남도의 정서와 옛 향기가 구석구석 밴 때문이다. 작가의 친필 원성에서부터 자인들과 나눈 엽서와 편지, 생전에 사용하던 펜과 필기도구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고인의 유품이라기보다 지금 현실에서 사용하고 있는, 작가가 여전히 생존한 상태로 글을 쓰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작가를 추념하는 공간이라기보다, 마치 작가가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는 명징한 사실을 보여주는 의도처럼 보인다. 그만큼 실재적이면서도 실존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아마도 51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평생 창작에 정진하느라 ‘문학과 결혼’을 해야 했던 이의 삶이 안타깝고 안쓰럽게 다가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최명희 작가는 전주가 낳은 최고의 예술가입니다.” “‘혼불’에 깃든 그의 문학 정신은 앞으로도 영원히 기억되고 우리가 계승해야 할 몫이라도 생각하거든요. 문학관 내부를 보시면 알겠지만 모든 것이 다 ‘혼불’의 정신에 맞게 구현돼 있지요. 작가 최명희의 삶과 그녀가 걸어온 문학의 길도 오롯이 느낄 수 있구요.”
노임순 문화해설사의 말이다. 문학관 한 켠 작가의 서재에 눈길이 오래도록 머문다. 살아 생전 창작의 공간을 재현해 놓은 것인데 그곳이 마치 감옥처럼 다가온다. 작품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결코 물러설 수 없었을 저 감옥에 갇혀 그녀는 피 흘리듯 한 줄 한 줄 원고를 채워갔을 것이다. 그 피 흘리듯 한 고투가 그녀의 생을 갉아먹었을 것이고, 역설적으로 작품에는 무한한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작가의 생가는 이곳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느냐는 물음에 노임순 문화해설사는  “최명희의 생가는 바로 문학관 뒤편 골목을 하나 끼고 돌면 보인다.”그러면서 “생가 터는 남아 있지만 소방도로가 생기면서 건물은 자취를 감췄다”고 덧붙인다.
최명희는 1947년 전주시 화원동(풍남동)에서 태어났다. 풍남초와 전주사범병설중, 기전여고를 졸업했으며 전북대 국문과를 나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후 10여 년에 걸쳐 중고교에서 국어교사를 했다. 아마도 이 기간 그녀의 내면에는 창작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던 것 같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창작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에서 보듯 그녀의 삶은 작가라는 천직을 향해 점차 옮아가고 있었다.
최명희는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쓰러지는 빛’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얼굴을 내민다. 이듬해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공모전에 장편소설 ‘환불’(제1부)이 당선, 중앙문단에 최명희라는 이름을 올린다. 이후 1988년부터 1995년까지 월간 ‘신동아’에 ‘혼불’을 제 2부~5부까지 연재한다. 국내 월간지 사상 최장기 연재로 만 7년2개월에 걸친 기간이다. 1996년 한길사에서 ‘혼불’ 10권이 발간되면서 길고 긴 창작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다.
1980년 4월 시작된 ‘혼불’의 첫 문장은 이렇다. “그다지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다”고.
단문으로 시작한 첫 원고는 그로부터 17년의 세월이 흐른 1996년에야 “그 온몸에 눈물이 차 오른다”로 완결된다. 창작의 혼을 불태웠던 작가는, 그러나 안타깝게도 1998년 암으로 생을 마감하기에 이른다. 오로지 ‘혼불’을 쓰기 위해 세상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작가는 진력을 다했다.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서사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남원의 매안 마을과 거멍굴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매안 이씨 가문의 삼대를 이루는 청암 부인과 그 아들 이기채 부부, 손자 이강모와 허효원 부부 등이 주 인물이다. 문중을 지키는 종부 3대의 이야기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특히 “나 홀로 내 뼈를 일으켜 세우리라”라는 말을 되뇌이는 청암 부인을 중심으로 소설의 전반부가 진행된다면 후반부는 손자 강모의 이야기와 거멍굴 사람들의 신산한 삶이 다뤄진다. 그러나 소설의 결말은 청암부인의 혼불이 효원에게로 흡수되면서 효원이 종부로서 문종을 지키는 것으로 끝난다.
전시실을 나와 문학관 인근을 차근차근 둘러본다. 고아하고 격조 있는 자리다. 한옥마을에 자리하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천품이 빚어낸 아우라이기도 하다. 이제 단풍이 들기 시작한 정원은 시나브로 가을의 정취가 완연하다.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이들은 이곳에 들러 문학이 지닌 힘을, 아니 한 인간이 지향했던 고귀한 표상을 느꼈으면 한다. 우리 삶도 이 계절 가을처럼 어느 샌가 흔연히 사라져 버릴 터이지만, 그럼에도 일생을 다해 추구한 아름다운 가치는 시간의 흐름과 무관하게 기어이 흔적을 남기고 만다는 사실을 또한 묵도하게 된다.
작가는 지난 1997년 제11회 단재상 수상소감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정말 쓰고 싶었던 것을 딱 한가지만 말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어둠은 결코 빛보다 어둡지 않다는 것입니다”라고. 그 말의 울림을 담고 그녀의 생가터로 자리를 옮긴다. 한옥마을을 방문한 이들이 골목골목을 누빈다. 색동옷을 입는 모습이 조선의 어느 한 때로 회귀한 듯하다.
최명희. 그녀는 작가로 태어나 작가로 살다 작가로 죽었다. ‘불립문자(不立文字)’는 최명희를 두고 이르는 것일 테다. 전주는 행복한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 최명희를 배출했으니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혼불’의 정신을 알린 작가가 이곳에서 탄생하지 않았는가.
“나는 보랏빛 우체부가 되고 싶다. 너와 내가 혈맥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고, 기계의 부속품이 톱니를 물고 한 모양을 형성하듯 썰렁한 손과 손 사이에 체온을 전해 주고 싶다. 냉각된 가슴들을 방문하여 푸른 얘기, 바다만큼이나 하늘 만큼이나 고운 사연들을 주고 싶다. 춥고, 공허한 마음의 성곽, 절망, 고뇌, 헤어나올 수 없는 슬픔의 지역에 뜨거운 사랑을 배달하고 싶다. 끊임없는 강처럼 구원을 향해 깊게 흐르는 꿈과 기다림을 심어 주고 싶다. 흙으로 빚어진 인간 본연의 자세로 말이다.”(최명희의 수필 ‘우체부’ 중에서, 1965년 전국남녀고교 문예콩쿠르에서 장원으로 뽑힌 작품-당시 기전여고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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