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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8-05-10 23:43
[전북포스트 20180510]'내일을 꿈꾼 자들에게 보내는 찬사'...혼불문학상수상작독후감 '대상'
 글쓴이 : 최명희문학관
조회 : 628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186 [61]

매체: 전북포스트

날짜: 2018년 5월 10일

제목: '내일을 꿈꾼 자들에게 보내는 찬사'...혼불문학상수상작독후감 '대상'

출처: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186

쓴이: 


 

혼불문학상수상작독후감대회 수상작품)

내일을 꿈꾼 자들에게 보내는 찬사

/대상작품: 나라 없는 나라

/글: 이미경(경기도 부천시)

 

•오랜만에 맛본 설렘 「나라 없는 나라」

쓰는 자와 달리 독자는 냉정하다. 그래서 때로는 읽던 책을 서슴지 않고 던져버리거나 잔뜩 기대하며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작가가 내미는 알맹이를 찾으려고 애쓰기도 한다. 뭔가 있는 듯, 향을 풍기며 끝끝내 아무것도 내밀지 않고 시침을 떼는 작가를 향해서는 욕을 뱉기도 한다. 속았다는 기분이 씻기지 않으면 그 작가와는 영영 이별해 버리기도 한다. 물론 독자 혼자만의 이별이지만. 그런데도 그들을 향해 재미있거나 근사하거나 놀랄 만한 어떤 이야기를 해보겠다는 작가는 얼마나 대단한가? 세상에 제일 무서운 존재일지도 모르는 독자를 향한 작가의 글쓰기 작업은 지독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쓰는 자의 노고를 헤아리기보다는 내 눈과 입, 머리의 호사를 더 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독자인 까닭에. 더군다나 요즘은 눈과 귀를 뺏는 온갖 볼거리가 넘치는 세상이니 그 앞에서 입을 여는 작가는 더욱 대단하다 싶다.

해야 할 일들에 밀려 읽다 만 책이 몇 권씩 쌓이고, 읽었던 부분인가 고개 갸우뚱하며 되풀이해 읽고, 잠시 틈을 타 표시해 둔 부분을 다시 펼치면 읽었던 것이 맞는지 기억마저 희미해져 앞으로 넘겨 읽는 지루한 작업이 되곤 했던 그즈음의 독서를 떠올리면 「나라 없는 나라」를 읽으며 받은 감동은 특별한 일이었다. 읽는 일에만 몰두하게 만든 실로 오랜만에 맛본 설렘이었다. 책을 펼쳐서 얼마 지나기도 전에 나는 「나라 없는 나라」에 빠져들었다. 시작 부분부터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팽팽했던 탓이다. 원거리의 카메라는 텅 빈 마당을 비추고, 대원군의 밭은기침 소리가 방 밖으로 가끔 새어 나온다. 방 안 풍경에는 대원군이 난을 치는 모습, 그리고 시중을 들기 위해 부엌인지 마당인지 뒷방 어디선가 곧 떨어질 하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서성대는 머슴아이까지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전봉준과 만남. 독자 누구도 그런 상상을 해보았을까? 낯선 풍경, 낯선 장면에 코 빠진 독자를 딥다 끌어당겨 이야기는 다음 고개 다음 고개로 잘도 넘어간다.

 

   
 

•동학혁명이 소재라고?

동학을 소재로 한 이야기라서 큰 기대감 없이 책장을 열었기 때문에 훅 빨려 들어갔던 것은 아니었을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아예 독자에게 외면을 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기대감이 없으면 아예 책을 열지 않을 거라는 생각까지 하면서, 「나라 없는 나라」가 독자에게 억울하게 외면당하지는 않았을까 안타까워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하는 사람이니 독자가 재미있어할 무언가를 잡고 타협부터 할 까닭은 없으니 작가 정신의 발로로 생각하기로 했다. 소설 「나라 없는 나라」를 통해 동학농민혁명을 다루어야만 했던 이유는 바로 소설가의 작가 정신을 가늠할 잣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대중이 좋아하는 소재는 얼마든지 많다. 좋아하는 소재를 잡아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작가 입장에서는 훨씬 쉽겠다는 생각도 했다. 많은 사람의 관심 속에서 이야기를 펼치는 것이니 독자를 사로잡는 과정도 훨씬 덜 고단하리라는 생각은 너무 글 쓰는 일을 단순화시킨 것일 수도 있으나 접근이 쉬운 소재와 만인이 잘 안다고 생각하므로 오히려 궁금하지 않은 소재 간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는 생각도 했다.

아무리 탁월한 작가라 하더라도 뻔히 다 아는 역사적 사실, 비극적인 결말로 이 땅에 스러져간 사람들의 삶을 새롭게 그려내는 일은 힘든 숙제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역사적 사실은 벗어던지지 못하는 두꺼운 옷쯤으로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 변할 수 없는 사실을 기반으로 출발하기 때문에 왜곡이라는 칼날에 글 전체가 부정당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모두가 믿는 사실을 잘못 건드리면 구설의 빌미가 되니 작가는 촉각을 온통 곤두세울 듯하다. 게다가 다 알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일은 얼마나 피 말리는 일일까? 하긴 그것 때문에 작가는 글을 쓰는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하리라 생각한다. ‘혼불문학상’ 거개의 작품들이 다 과거의 역사 속으로 독자들을 데려간다. 작가 최명희의 영향 탓일까? 작가들이 형상화한 세계로 따라가면서 왜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인지 모르겠는 작품들을 꽤 보았다. 작가의 고답적 취향 때문에 여기까지 따라온 건가 싶은 생각에 살짝 언짢은 적도 있었다. 과거의 풍경으로 들어갔다가 작가가 먼저 길을 잃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작품을 생각하면 「나라 없는 나라」는 왜 역사소설을 쓰는지, 써야만 하는지를 알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잘 안다고 생각한 역사적 사건, 그리고 아마도 그리 살았을 거야, 조금만 생각해봐도 짐작할 만한 사건들. 그러나 어느 하나도 내가 생각했던 정도의 뻔한 것은 없었다. 낯설고 새로웠다. 싸움 현장, 거기에 감도는 긴장감과 죽음을 향해 서 있는 자들을 향한 소리 없는 지지와 응원, 그리고 이 땅에 뿌려진 무수한 목숨을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말법은 몹시 따스했다. 그래서 「나라 없는 나라」의 문장을 특별하게 느낀 건지도 모르겠다. 역사의 한가운데를 뚜벅뚜벅 두려움을 이기며 걸어간 백 년 전 그들의 결행을, 긴장감을 잃지 않고 끝까지 그려낸 건 동학농민전쟁으로 죽어간 내일을 꿈꾸는 자들에 대한 깊은 애정 때문이 아닐까?

동학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이었을까? 역사적 사건,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의 반란, 외국군까지 불러들여 막강해진 군의 위력에 제압당한 비극적인 사건. 결과론적 시각으로 보면 저절로 패배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건을 내용으로 한 「나라 없는 나라」를 읽으면서 나는 잡혀가던 전봉준의 사진을, 사람들의 피로 물든 산야를 잊으려고 했다. 무모한 싸움이었다고 말한 적은 없었지만, 차라리 싸우지 말지 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으니 나는 체념적 태도로 동학을 바라보고 있었던 듯하다. 물론 내가 패배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고, 딱히 문제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입으로는 ‘동학혁명’이라 말했지만, 인식은 ‘동학난’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역사의 주역이라고 일컫는 힘센 자들이 만든 프레임에 갇혀 사고한 결과였음을 깨닫는다. 진보주의자라고 스스로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의식은 익숙한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을, 질문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만들어준 틀로 세상을 보고 나 스스로 부패한 권력 집단을 돕는 일을 반복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한다고 해도 극복 불가능한 패전의 역사를 통쾌한 승리의 역사로 바꿀 수는 없다. 약자를 응원하고 그들의 지난한 싸움이 불타는 정신력으로 끝끝내 승리하기를, 통쾌한 기쁨을 염원하지만, 판타지 소설이 아닌 한 불가능한 일이다. 백성들의 역사에는 그래서 늘 안타까움과 한숨 소리가 들린다. 승리를 염원하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갇힌 듯 답답증이 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러니 권력을 쥔 자들의 힘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패배의식이 내 의식을 침범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힘센 자를 어떻게 이기겠어?

물론 동학혁명이 소재로 참신하지 않다고 여기는 다른 이유도 있다. 동학농민전쟁은 여전히 오늘 우리의 삶에서 되풀이되고, 비극적 결말에도 익숙하다. 무수히 보아왔던 현실에 덧입혀져 미래의 삶마저도 희망 없는 세상으로 떠올리게 만든다. 최근 우리가 경험한 현실을 떠올려도 알 수 있다. 변화 발전하기보다는 무한 반복의 역사로 인식하며 늘 가진 자들의 탐욕이나 위선, 기만에 속아 속을 내주는 힘없는 자들의 무지 때문이라고 나는 늘 탄식했다. 가끔 무거워지면 겨우 한숨이나 토하며 가벼워지려고 애를 썼다. 탄식하다가 겨우면 차라리 외면하고 비끼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죽음의 순간에 이철래는 묻는다. 당신의 선택이 옳았느냐고, 그것을 믿느냐고. 죽음이 두렵지 않았을 리는 없다. 살아도 산목숨이 아닌 현실은 내던지고 새로운 세상을 꿈꿔야 하지 않겠는가? 새 세상을 향한 길이 시커멓게 입을 벌린 죽음의 길처럼 보일지라도 두려움을 이기고 성큼 나아가야 하지 않겠나? 불현듯 변화를 꿈꾸지 않는 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쩍부쩍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염려만 하는 내가 불편하였다. 패배주의적인 내 생각이 결국 사랑에 대한 직무 유기라고 정리한 것은 더팔이와 을개의 성장, 호정의 변화, 이철래의 실천적 태도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라 없는 나라」를 읽는 동안 빙하처럼 단단한 패배 의식은 조금씩 균열을 일으켰고, 수많은 농민군과 초군, 싸움의 대열에 합류한 백성들의 장한 꿈이 보였다. 당장의 승리를 거머쥘 수 없음을 알면서도 이전과는 다른 삶의 경계를 넘은 사람들의 주체적인 결정은 그래서 더욱 값지다. 촛불을 들었던 천만의 사람들이 결국 부패한 정권을 무너뜨렸던 것처럼 그 옛날 절대왕권 국가에서 근대국가로 넘어오던 그때, 특별히 공부를 더 한 것도 아닌데, 세상 이치를 깨닫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죽음이 보이는 길을 걸어간 수많은 농민군. 그들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상상할 수는 없었겠지만, 자신들을 위하는 지도자를 알아보고 믿었다. 그리고 서로서로 연대하며 역사의 주체자로서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길목임을 믿어 의심하지 않고 걸어갔던 그들의 결정에 눈물이 났다. 그랬구나. 눈먼 소가 요령 소리 듣고 그냥 따라간 것이 아니었구나. 그들 각자가 좋은 세상을 꿈꾸었구나. 오늘 우리의 삶 또한 결코 우연한 부산물이 아니라는 사실에까지 생각이 닿으며 감동이 일었다. 삶의 주인이 자신임을 아는 일은 경천동지할 일이다. 주체성은 삶의 방향과 실천으로 나아가게 이끄는 에너지원이다. 동학농민전쟁이 참패로 끝난 결과만으로 무모한 싸움이라 말할 수 없다. 비록 싸움은 엄청난 위력의 무기로 전국이 농민군의 학살당한 시신으로 넘쳐났지만, 거꾸로 이 땅의 주인은 바로 백성이라는 인식이 온 나라에 불길처럼 번져갔다. 관군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는 전쟁이었는가? 동학농민전쟁은 새 세상을 꿈꾸며 연대한 인간 정신의 승리를 보여주는,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혁명이다. 죽음의 역사라고 봤던 동학혁명은 불멸의 인간 정신의 승리임을 「나라 없는 나라」를 통해 깨닫는다.

 

   
 

•아름다운 문장

「나라 없는 나라」를 읽는 동안 경험한 또 하나의 기쁨은 아름다운 문장이다. 섬세하고 적확한 표현들은 우리의 감각이 놓칠 수 있는 것들을 고스란히 복원해 내 속의 감각과 감성을 일깨웠다. 내가 쓰는 말들이 거칠어 적절한 말을 떠올릴 수 없어 안타까웠던 일을 생각해 보면 섬세하고 아름다운 표현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더 실감하게 하는지 안다. 문장 예찬이 행여 작가의 오랜 단련으로 만들어진 기술적인 결과물로 받아들이면 어쩌나 싶은 걱정이 슬그머니 솟는다. 물론 작가는 문장을 만드는 데 긴 시간 공력을 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문장 그것만을 위해 공력을 기울였을 리는 없다. 잔뜩 솜씨를 부린 화려한 문장이었다면 독서 중에 혐오를 맛보았을지도 모르고, 그랬다면 이 소설에 대해 굳이 아름다운 문장을 언급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름다운 문장은 소설 속의 장면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속내도 섬세하게 그려내 오감을 극대화해 주었다. 콕 집어서 구체적으로 말하라 하면 어렵지만 많은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새벽, 아무도 다니지 않은 길을 바람처럼 빠르게 걷는 전봉준이 떠오른다. 동저고리 바람으로 추위를 견디며 스승을 기다리는 을개의 모습에 읽는 나도 몸을 움츠렸다. 김교진과 더는 접점이 없는 상황에서 홀연히 집 밖을 나서는 이철래를 따라 문밖을 나서는 호정의 안타까운 순간은 또 어떤가. 나는 대원군의 밭은기침 소리를 들으며 까마귀 깍깍대는 어둠이 스민 궐을 기웃대기도 했다. 겨울 아침 차가운 공기에 홑겹 옷으로 스미는 혹한의 시린 바람에 몸서리를 치기도 했고, 얼어붙은 골목길 살얼음이 우두둑 으깨지는 소리를 들으며 그들과 같이 걷기도 했다. 움막에서 비장하게 죽어간 장팔과 손네의 마지막 순간에는 잠시 읽기를 멈추었다. 불길 속에서도 비명을 삼키고 최후를 맞는 둘의 모습을 뭐라 말할까? 목숨을 구걸하지 않던 그들의 모습은 무너뜨릴 수 없는 인간 정신의 존귀함을 떠오르게 했다. 전봉준과 뜻을 함께한 김개남, 김덕명, 손화중, 서장옥과 같은 장수들의 우렁우렁한 소리, 가끔 언성을 높이며 전략을 세우던 그들의 목소리. 그리고 대원군, 유길준과 같이 역사서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 그들이 제각기 나라 안팎의 정세를 자기 자리에서 어떻게 읽었는가를 보여주는 장면도 백 년 전 세상으로 넘어가게 했다. 과거 어느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비현실적인 시․공간으로 뚝 떨어지게 마련인데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그려주어 백 년 전 세상을 내 속에서 그려낼 수 있었다. 대원군과 전봉준이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대면한 장면은 역사적 상상력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노회한 정치가인 대원군이 농민군 지도자의 불을 품은 눈에 간담이 서늘하다던 장면에서는 작가의 상상력에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숱한 공간과 사람들. 딱 맞는 표현을 찾기 위해 애쓴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거기에는 늘 작가의 따뜻한 시선을 느껴진 것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나라 없는 나라」를 덮을 때까지 한결같은 따뜻함으로 읽혔다.

•작가의 세계관

답답한 나라 안팎의 정세에 고민하는 권력자들. 읽으면서 내내 그들을 믿을 수 없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늘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일이 우선임을 떠올리면 의심 없이 그들을 바라볼 수는 없었다. 권력자가 어떻게든 도와주리라는 기대를 하는 순간 지나친 낙관론에 빠지게 되니 읽으면서도 한 발 빼고 바라보게 된다. 「나라 없는 나라」 속 권력을 가진 인물들의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결코 시대의 흐름을 읽고 대의에 따라 자신을 내맡길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대부분 자신이 디디고 있는 땅을 지키고 무너져 내리는 것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작가는 사료에 따라 냉정하게 지배계층의 모습을 재현하였다. 그들의 판단과 결정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어 작가의 세계관에 안심하며 읽었다. 그들에 비하면 이철래는 특별하다. 지식인으로 순정성이 느껴지는 인물이었다. 자기 안위에 몸을 맡기지 않고, 사랑을 선택할 수도 없는 그의 양심, 결국 농민군으로 생을 마감한 그를 통해 잠시 삶의 자세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신념을 따르고자 노력하는 그의 자세는 지배 계층이 지녀야 할 도덕성이지 않을까.

권력자들의 모습을 통해 거꾸로 선명하게 주목받는 인물이 전봉준이다. 녹두장군 전봉준은 결코 우연히 많은 사람에게 신뢰를 받았던 사람이 아니다. 그는 만백성이 누릴 평화롭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 자이다. 꿈만 꾼 것이 아니라 실행에 옮겨 미래의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사람이고 혼자 걷지 않고 만백성과 연대하여 함께 걷고 실행에 옮긴 사람이다. 녹두장군과 함께 걷는 길이 죽음의 길이었음에도 함께 걷기를 주저하지 않은 사람들의 선택은 목숨 값 이상의 가치 있는 삶을 지향한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의 결과이지 않았을까?

•작가의 따뜻한 시선

같은 책을 두 번 세 번 읽는 일은 몹시 드문 일이므로 차라리 아름다운 문장 앞에서 멈추어 충분히 음미하며 가는 것이 낫겠다고 「나라 없는 나라」를 읽으며 여러 번 속도 조절을 했다. 실제 나는 천천히 음미하며 읽었을 뿐만 아니라 다 읽고도 다시 한번 읽었고, 책 여기저기 넘겨서 또 읽었다. 다 읽고 난 후에도 「나라 없는 나라」 주변을 어릿대며 생각에 잠기곤 했다. 지인들에게 「나라 없는 나라」를 선물한 것도 내게는 특별한 일이었다. 기자가 되겠다는 제자에게 졸업 선물로 내밀기도 했고, 오랜만에 만나는 동료들에게 송년 기념이라고 책 읽는 기쁨을 맛보라고 덕담과 함께 건네기도 했다. 인터넷 서점에 독자 리뷰 글을 남긴 것도 나로서는 작가에게 최대치의 감사를 남긴 셈이다. 작가의 시선이 따뜻함을 빼놓을 수 없다. 비극적인 역사를 떠올리는 일이 힘들었음에도 그곳으로 나를 데려가고, 그 역사 현장에서 미처 깨닫지 못한 많은 것들을 보여준 작품, 「나라 없는 나라」는 여전히 내게는 최고의 작품이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담아낸 동학농민혁명은 고매한 정신이 꽃을 피운 세계사에 드문 사건으로 각인되었다. 교과서 안에 갇힌 이야기로만 이해했던, 딱딱하게 굳어 상상력이 작동하지 않았던 사건이 말랑거리는 인간 정신에 대한 찬탄으로 변했다. 아무리 지독하고 힘든 오늘을 살아도 그래도 살 만한 세상이란 생각을 가지게 했다. 내달리려는 마음을 붙잡아 한 호흡 쉬게도 했고, 내 상상에 색을 입히고 때로는 아우성이 번지게도 했다. 추운 겨울, 얼어붙어 비명을 지르는 발밑 소리를 따라 몸을 옹송그리면서 큰 전투에 대비하는 사람들의 뜨거운 가슴을 떠올리게 했던 독서였다. 역사의 한 장을 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따라가며, 한세상 살아낸 사람들의 호흡을 여운처럼 듣는다.

 

수상소감) 대상 - 이미경

내 인생에 이런 글을 쓰는 수도 있구나, 혼자 웃는다. 대학교 1학년, 국문과 MT를 화양계곡으로 갔다. 여러 가지 활동을 했는데, 백일장에서 내가 장원을 했다. 백일장이 국문과 MT의 꽃이라 말하고 싶지만, 사실 뙤약볕에 다들 억지로 쓴, 참으로 허접한 행사였다. 그럼에도 그 순간이 내게는 신의 계시라도 받은 듯 찬란했다. 부상은 신동엽 시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였다. 아직도 그 시집은 책장에 꽂혀 있다. 쓸어버릴 책들은 무수히 많지만 신동엽의 시집은 내 손으로 버릴 수 없는 책이다. 시를 써서 상을 받다니…. 그림을 그려 받았거나, 공부 잘했다고 받은 상이 오래도록 기뻤던 것 같지는 않다.

「나라 없는 나라」는 여러 면에서 나를 사로잡은 소설이다.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이렇게 따뜻할 수 있구나, 세상을 이렇게 읽었구나, 그의 이런 시선이라면 어떤 글도 믿을 수 있겠다. 인간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건 뭐냔, 질문이 솟았다. 인터넷 여기저기 리뷰를 쓰면서 지면에 속박을 느껴 쓰기를 멈추곤 했는데. 혼불문학상 수상작 소감문 대회라니. 게다가 50매라니. 읽으면서 받았던 감흥을 흡족하게 쓸 수 있겠다 싶었다.

나는 이광재 소설가의 팬이다. 「수요일에 하자」가 출판되어 무척 반가웠다. 읽는 재미와 감동 모두를 충족하는 작품이었다. 아이들 말로 엄지 척, 이다. 「나라 없는 나라」를 혼불문학상으로 뽑은 심사위원들께도 엄지 척, 이다. 훌륭한 작품을 골라 독자와 만나게 해 준 소중한 분들. 독자로서는 여러모로 겹친 행운이다. 게다가 책 잘 읽었다고 상도 주니 기쁨 두 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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