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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8-05-10 23:41
[전북포스트 20180510]'패자의 서'특별부록... 혼불문학상수상작독후감 우수상 김봉성 씨
 글쓴이 : 최명희문학관
조회 : 47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187 [12]

매체: 전북포스트

날짜: 2018년 5월 10일

제목: '패자의 서'특별부록... 혼불문학상수상작독후감 우수상 김봉성 씨

출처: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187

쓴이: 


 

혼불문학상수상작독후감대회)

『패자의 서』특별 부록

/대상작품: 고요한 밤의 눈

/글: 김봉성(경상북도 경산시)

 

소소한 ‘혁명’이었다. <독서클럽> 회원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쓰다 보니 『패자의 서』였다. 내 안에는 B, D, X, Y, Z가 점처럼 흩어져 있었다. 쓰기 위한 ‘생각’ 속에서 내 안의 점들이 선으로 이어지고, 면으로 펴졌다. 그 면이야말로 세상으로 나아갈 한 점으로서, ‘진실의 원석’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나는 세상의 가짜 점, 스파이였다.

나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 그녀의 말대로 다른 누군가로 새 삶을 사는 것도 가능할까?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가 꿈꾸었을지도 모를, 더 나은 사람으로. p.49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그런 것들이다. 그리고 앞으로 더더욱 선택할 것이 없어질 것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으로 믿어지는 삶이 내 것이지만 그 삶을 사는 것이 진짜 나일까. p.124-5

   
김봉성씨

꿈을 말하는 것에 대한 조롱이 부당하지만은 않은 나이, 아마도 X의 나이, 서른다섯 살이었을까. 그보다 조금 더 나이를 먹은 나는 확실했다. 꿈 없이, 밥을 잘 먹었다. 선택은 짜장면과 짬뽕 사이에서 몸을 부렸다. 어느덧 인생사 표준 매뉴얼 속 소비 목록이 꿈을 대체했다. 더 나은 나는 아파트 평수에 비례한다고 여겼다. 나 역시 내 안위가 보장되면 사람을 죽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중요한 것은 꿈이 아니라 보상의 크기였다.

처음에는 스파이 소설로 읽었다. 공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15년간의 기억이 사라진 X, X에게 접근하는 Y가 풍기는 미스터리한 냄새에 단박에 몰입했다. 속도감 있게 읽다 보면 내 의문은 조직과 스파이를 향했다. 그들의 목적을 알 수 없었다. 스파이는 이곳에 있지만 이곳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이다. 이 정의만으로는 책 속의 스파이들이 설명할 수 없었다. 스파이들은 중반 이후 스파이 활동을 하지 않았다. 작가의 기발한 농락이었을까. 책에 등장하는 ‘스파이 이야기를 하지만 스파이 책이 아닌’ 책이 바로 이 책이 된 것이었다. 내가 책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책 속의 이야기가 책 밖으로 나왔다. 스파이들이 <독서클럽> 근처로 모여들수록 목적 없는 내가 부각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나만 생생하게 스파이로 활동 중이었던 것이다.

이들에게는 나라도 없고 소속도 없다. 안 될 거라고 생각하고 쉽게 포기하고 얻는 게 있다 싶으면 바짝 엎드리는 자세를 유지한다. 시키는 일은 아주 잘할 것이다. 이들은 그저 그런 소모품 스파이로 평생 자신이 스파이인 줄 의심도 해보지 못한 채 봉사하고 희생하다가 소용없어지면 버려질 것이다. 실수해도 두 번째 기회 같은 것은 없을 것이다. p.169

‘스파이’를 가리면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에서 인용해 왔다고 해도 믿음직한 구절이었다. 스파이의 정체는 경쟁 중심의 자본 사회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인 것이었다. 우리는 돈에 목줄을 내어주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졌다. 그러는 사이 스파이가 남고 나는 사라졌다.

N포 세대는 희망하지 않음으로써 현재를 연명할 수 있었다. 자기가 가진 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p.169) 최선을 다했다. 희망을 거세하고 저절로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기도 했지만, 생각해 봐야, 소모품으로 전락한 자신을 마주할 게 뻔했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누구든 소비 지상주의가 주는 환상은 달콤했다. 성공적인 환상을 지키기 위해 거짓된 삶(p.164)에 충실했던 것이다.

이것이 나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자 B, D, X, Y, Z로 칭해지는 익명들이 세상의 부속품이기도 하지만, 내 안에 파편화된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즐거운 오독을 시작했다. 나는 이 모습들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다만 밥을 벌어먹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눈(目) 감아 왔다. 눈 감은 밤 동안 고요히 돈이 내려 진실이 묻혔다. 물론, 이 『고요한 밤의 눈』을 읽기 이전 이야기였다.

Y는 대표적인 나였다. Y는 가끔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서만 살아 있는 인간(p.84)이다. Y는 조직에서 부여한 역할로만 존재했다. 스스로 내가 누구인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소속이 나를 결정하고, 나는 소속 집단의 매뉴얼에 최적화된 인간을 연기했다.

당신은 진짜 배우인가? 나는 그렇다고 말해줄 수도 있다.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 그들은 나에 비하면 하수이다. 목숨 걸고 연기한다는 뻔한 거짓말, 나에게 진실이다. 내가 아닌 나로 사는 것, 온전히 그 사람이 되지 못하면 나는 살아갈 수 없다. p.57

   
 

Y가 X를 만나지 않았다면, 『편의점 인간』의 게이코가 되지 않았을까? 목적 달성을 위해 주변을 보지 않는 인간, 편의점 업무 매뉴얼로만 살아가는 인간, 그래서 사적인 취향이 말살된 조직 매뉴얼 그 자체. 농도만 다를 뿐, 나는 Y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를 소개할 때 ‘OO에 근무하는’을 입버릇처럼 말했다. 내 정체성의 중심은 OO에 근무하는 것이었다. OO인(人)은 가족보다 일이 먼저였다. 다행히 나는 독서라는 취향 덕분에 이 책을 만나 내 안의 Y를 발견했다. 아직 고단수 스파이인 게이코는커녕 Y로도 전이되지 않았다. OO인(人)과 나 사이의 거리를 재기 시작했다. 이 고민이야말로 나의 Y가 다른 ‘점’을 찾아 손을 내미는 시작일 것이다.

X의 15년 동안의 망각은 이 책에서 가장 의미심장했다. 스무 살부터의 기억만 사라졌기 때문이다. 요즘 스무 살은 취업 준비의 스타트라인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십 대 중반이 그러했다. 어렸을 때는 학년별로 기억이 분류되었지만, 이십 대 중반 이후로는 뒤엉켰다. 기억의 밀도도 떨어졌다. 취업 전에는 도서관에서 엇비슷한 일상을 반복했고, 취업 후에는 자판기 커피가 스타벅스로 바뀌긴 했지만 일상이 반복되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망각과 통장 잔고가 엇비슷하게 교환되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한가?

인생의 목적이 취업이나 집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내게도 『노인과 바다』와 『연금술사』의 동명이인 산티아고나 『갈매기의 꿈』의 조나단과 함께하던 B의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꿈을 이루기 위해서 대학에 가려고 했지만, 취업 압박에 B는 점점 엷어졌다. 아마 B가 제거된 사실을 몰랐으므로 ‘양심’에 꺼릴 것도 없었을 것이다.

B는 신념을 가진 인간이었다. 조직이 세계를 긍정적으로 이끈다고 믿었고, 그 믿음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믿음과 실제의 괴리를 발견했을 때, 그는 적극적으로 의문을 가졌다.

“자네 전향자가 되려고 하나?”

“저는 전향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뿐입니다. 제가 스파이가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는 평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세상을 위해 살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자네 결심은 스파이를 그만두겠다는 뜻인가?”

“아니오. 그때 그 스파이로 죽겠다는 뜻입니다.”

(중략)

세상은 의심하고 경멸하고 회피하고 거부하고 선언해야만 지킬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스파이였다. 스파이로 태어나 스파이로 살았다. 그리고 스파이로 죽을 것이다.

이것은 내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p.256-7

B는 의문이 만들어낸 갈림길에서 한쪽을 선택했다.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무엇이든, 중요한 것은 선택을 실천하는 신념인 것이다. ‘이것은 내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라는 B의 선언은 공산주의 신념의 화신 『태백산맥』의 염상진과도 같은 결의가 보였다. B는 조직의 회유와 협박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가 생각하는 B를 만들어 나갔다. 그렇게 믿는 한 그것만이 진실(p.128)이었다. B는 용감한 사람이었고, 나는 비겁했다. 내가 B였던 적이 있었을까?

“다 알고도 지금 모험을 하자는 겁니까?”

“움직일 때를 선택하는 건 우리야. 우리는 더 큰 그림을 봐야지.”

그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건 어차피 안 된다는 절망감이다.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고, 말하지 말라고 하고, 말해봤자 소용없다고 한다. 그리고 두려움이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수 있다. 이야기가, 의견이, 사람이. 더 멀리 적어도 이 게임의 끝을 내다보아야 한다. p. 212

B와 같은 신념의 Z는 성실히 실천했다. Z의 신념은 소설이었다. 가난하지만 썼다. Z가 생각을 다듬어나가는 속도는 반(反)시장적이다. 스스로 깨우쳐 길을 찾는 방식은 시간이 오래 걸리기(p.229) 때문이다. Z는 노트북 앞에 앉아 단어, 문장을 썼다 지웠다 한다. 밤이 되면 그 가운데 아주 일부만이 살아남고, 다음 날 아침 깨어 다시 보면 살아남는 것이 거의 없다(p.96). 그렇게 지운 것은 쓰던 시간의 자발적 망각이었다. 쓴 것을 아무도 읽어주지 않아도 사회로부터 망각당해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므로, Z는 가장 치열하게 망각과 싸우고 있는 사람이었다.

하루를 살아남기 위해 생각을 할 시간은 없었다. 생각은 최고의 지성이었고 최상의 사치였다. 그런 생각 할 시간 있으면 일이나 해. 그것은 아주 오래된 허무의 명령어였다. p.144-5

다수의 젊은이들이 자기가 스파이인지도 모르는 스파이로 전락한 것은 이 때문이다. 생각하다가는, 365일 평균으로 나누면 초등학생 용돈도 되지 않는(p.103) 수렁에 빠진다는 공포를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Z는 소설을 썼다. 단 하나의 이유이자 유일한 진실, ‘나’ 때문이다.

뭘 모르지만 나도 아는 게 있다. 그건 바로 나 자신이다. 소설가가 갖추어야 할 것은 사회생활이 아니라 통찰력과 상상력, 추리력이라고 믿는 나 자신. p.103

 

소설을 읽는 것은 무엇보다 재밌어. 그런데 그 재미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재미하고는 좀 달라. 너무 재밌어서 아무 생각이 안 나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재미가 있어. p.148

진실을 찾아가는 재미. 내가 Z였던 적은 있었을까? 그런 적 없다고 발뺌하지는 못하겠다. 고백컨대, 이 책을 읽기 전에도 내 안에도 B와 Z가 있는 걸 알고 있었다. 잊고 있었을 뿐, 스무 살 이전에 <독서클럽>에 가입한 적이 있었다. 모두를 기억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아무것도 기억하지 말라(p.51)는 Y의 엄마 말처럼, B와 Z를 기억해 버리면 지금의 내가 보잘것없어질 것 같아서 망각한 척했던 것이다. 몰랐다면, 내가 비루한 인간은 아닐 수 있으니까. 그러나 『패자의 서』를 써 내려가는 마당에 더 이상 뻔뻔해지지는 못하겠다.

일기 속에 Y, X, B, Z를 풀었다. 한 점, 한 점, ‘생각’했다. 점은 선으로, 선은 불완전하나마 면으로 바뀌어갔다. D가 모든 것을 기억하듯이 내 안에 각자 서식했던 Y, X, B, Z가 조금씩 연결되었다. D는 죽은 쌍둥이 언니의 그림자 속에서 세상을 관망했다. 내 일기 역시 내가 아닌 것처럼 나를 관망했다. 일기를 쓰는 동안 어느새 D가 된 일기가 내게 말을 걸었다.

“오길 잘한 거 같아요. 정말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아졌어요.”

“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처방전을 말씀드리죠.”

“수면제 같은 건가요?”

“필요하면 그 처방전도 써드리죠. 하지만 정말 작가님에게 필요한 처방전이 있어요.”

“……”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을수록 더욱더 소설을 쓰세요. 더 환상적인 소설을…… 계속 쓰세요.” p.183

나는 내면의 대화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D와의 대화를 통해서 ‘나’를 계속 써 내려갈 수 있다. 일기 속에서 점이었던 것들이 선이 되고, 면이 되어 ‘나’다.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에서 다비드를 꺼내듯이, 우리는 시간 속에서 ‘나’를 창조해 나가는 것이다. 물론, 아직 나의 ‘나’는 윤곽만 어렴풋했다. 그 속에 무엇을 새겨 넣을지는 잘 모르겠다. 꽤 오래도록 눈 속에 파묻혀 있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어렸을 때의 취향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고, 나이가 들다 보니 조금 더 신중해졌다. 다만 윤곽을 발견함으로써 앞으로 무언가를 새겨 넣어야 한다는 의무에 수긍했다.

내부에서 면을 이뤘다면 외부의 다른 점과 제대로 이어질 준비가 된 것이었다. 모든 개인은 타자와 관계하며 지내므로 개인은 개별자로 존재할 수 없다. 나 혼자 면을 소리쳐 봐야, 그건 세계 내부의 한 점에 지나지 않는다. 타자와 관계하지 않는 신념은 공허했다. 아내와 별거 중인 남편, 독자 없는 작가처럼 B, Z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내가 믿는 나의 진실은 타자의 믿음이 포개져야 세계 속에서 진실로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진실은 인간이다. X가 Y에 의해서 자신을 규정해 나가는 것처럼 ‘나’의 진실 속에 ‘너’는 배제될 수 없다. Y는 X를 선택했다. X도 Y를 선택했다. 각자의 선택이 포개졌다. 톨스토이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이미 답했듯, 사랑보다 강력한 진실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점으로 존재한다. 내가 정확히 아는 것은 다섯 정도. (중략) 점을 장악하는 것, 그 점을 잇는 선을 파악하는 것, 그리고 면을 이해하는 것이 스파이의 재능이다. 그는 이제 나에게 면이 된 것일까. p.87

나는 어떤 것을 선택했고 그 선택을 위해서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선택의 여지라면 여지일 것이다. 그런 선택마저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리고 이제 나는 내 선택을 지키려 한다. p.154

내가 사는 곳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 그 사랑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근본이라고, 그 모든 깨달음으로부터 치유가 온다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신의 재능과 열정에 눈을 뜨고 공부를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힌 뒤 참여하라고. 진부하지만 늘 사랑이 정답이죠. 그 이야기가 저에게는 환경 문제뿐 아니라 인생 문제의 해결책처럼 보였어요. 지금 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이 나라, 이 지구, 그리고 결국은 나의 인생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사랑하면서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p.289

『패자의 서』에는 사랑이 쓰일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이다. 사랑을 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스파이들이 그토록 수호하려 했던 숫자, 최소한의 숫자가 없기 때문이다. 비혼이 ‘주의’가 되어가는 것과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이 명백한 증거다. 사랑을 하더라도 선은 잇되 면은 유보한다.

이 책도 밥벌이 고민에 대한 해답을 주지 못했다. B가 신념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명품 매장을 농락할 수 있을 정도의 부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고, X가 Y를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것도 BMW 이상의 부가 밑바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헌책방 노인이 말한, 차라리 노인이 낭만적인 시대(p.254)에는 폐지 줍는 노인이 누락되었다. 위대하도록 낭만적인 ‘게츠비’ 역시 부를 축적한 후에서야 데이지를 향해 달려갔었다.

이것이야말로 ‘신과 같은 힘을 가진 자’, 시장주의의 전능이다. 그가 심어둔 스파이는 A와 B를 연결할 수 없게(p.234) 한다. 나와, 나의 세대들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위험에 이겨본 적 없다. 그래서 이길 희망을 갖지 않는 것에 익숙해졌다. 종국에는 아예 싸울 줄 모를뿐더러 비록 이번에 싸워서 승리하지는 못해도 승리에 한 걸음 가까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상하지도 못한다(p.166).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싸움이기에 혁명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지원군이 있다. 『패자의 서』를 작성하기 위한 필요조건, ‘혼불문학상’이다. 주최 측은 Z를 발굴하여 꽤 괜찮은 스파이 연봉만큼의 상금을 보조했다. 그래서 Z는 먹고사는 문제에서 한동안 자유로워졌을 뿐만 아니라 가진 자가 옳은 것이 되는 세상(p.250)에서 쓰는 일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얻었을 것이다. 덕분에 이 ‘암호책’이 세상에 널리 퍼질 수 있게 되었고, Z는 앞으로도 혁명의 선두에 서 있을 것이다.

타 문학상과 달리 ‘혼불문학상’은 Z를 점으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독후감 대회를 개최하여 Z와 연결될 나 같은 사람을 일깨웠다. 나 같은 범부는 스파이의 습성이 남아 상금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토록 열심히 ‘생각’하면서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고요한 밤의 눈』을 중심으로 내 안에 파편화되었던 『한국이 싫어서』, 『노인과 바다』, 『연금술사』, 『갈매기의 꿈』, 『편의점 인간』, 『태백산맥』, 『위대한 게츠비』가 선으로 이어져 하나의 면, 『패자의 서』의 작은 부록이 되었다.

이제는 내가 되고 싶은 한 사람의 인생을 꾸미는 것(p.231)으로 진짜 내가 될 수 있음을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인생을 읽어줄 독자가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나의 D와 대화를 나누며 나도 독자가 될 준비를 할 것이다. 그러다 곧 만개할 벚꽃 같은, 연애편지를 쓰고 싶다. 혁명적으로.

 

○수상소감) 우수상 - 김봉성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일분쯤 지났을 때였습니다.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라면 불면 어쩌나 걱정을 하며 받았습니다. 수상 소식이었습니다. 감사하다는 말만 반복한 것 같습니다. 통화 시간은 50초.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라면은 불지 않았고, 저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는 것으로 밥을 벌어먹습니다. 독서의 바른 길이 무엇인지 몰라도 틀린 길은 압니다. 제가 10년 남짓 걸었던 길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권 수만 채운 시간이었습니다. 읽으면 무의식에 무언가가 누적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년에 123권을 읽은 다음 해, 저는 저의 오답을 인정했습니다. 양에 대한 집착은 속독을 강제했고, 속독은 멈춤을 거부해서 생각할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제가 갔던 길로 빠지지 않게 지도했습니다. 오답의 시간 속에서 제가 얻은 정답은 밥을 먹고 똥을 누듯이, 책을 먹으면 독후감을 눠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느리게 읽었습니다. 줄거리가 아니라 주제를 가지고 놀았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쓴 독후감을 첨삭하고, 가끔은 제 글이 답 인양 참고하라고 보여주곤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독서의 바른 길이라고 생각했지만, 철없던 시절 ‘양의 독서’도 당시는 바른 길이라고 생각했으므로 지금 오답을 가르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잠재했습니다.

이번 혼불문학상 수상작 독후감 공모전은 제 밥그릇의 당위성을 증명하는 기회였습니다. 평소처럼 읽었고, 아이들에게 가르친 대로 썼습니다. 아이들과 같이 읽은 책들도 소환해서 독후감에 녹여냈습니다. 응모했습니다. 응모하고 보니 ‘나는 사기꾼이었을까.’하는 죄의식이 체증처럼 느껴졌습니다. 4월을 보내고 5월 4일, 톡톡, 톡, 이게 웬 사이다일까요.

전화를 끊고 30초쯤 뜸을 들이는 동안 수상소감의 얼개를 더듬었습니다. 화웅의 목을 따고 온 관우의 기분으로 라면을 먹었습니다. 라면은 불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은 오늘부터 ‘새우맛’ 그 라면입니다. 좀 더 자신 있게 스파이에 대항하는 ‘사람’을 길러내겠습니다. 『패자의 서』는 멈추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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