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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8-05-10 23:40
[전북포스트 20180510]"난설헌 초희를 느낀다".... 혼불문학상수상작독후감 우수상 윤희경
 글쓴이 : 최명희문학관
조회 : 45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188 [12]

매체: 전북포스트

날짜: 2018년 5월 10일

제목: "난설헌 초희를 느낀다".... 혼불문학상수상작독후감 우수상 윤희경

출처: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188

쓴이: 김미영 기자


 

혼불문학상수상작독후감대회

난설헌 초희를 느낀다

/대상작품: 난설헌

/글: 윤희경(경기도 수원시)

 

취우(翠雨). ‘청사초롱을 흔드는 야윈 빗줄기’

초희의 함이 들어오던 날. 야속하게도 하늘은 어둑하니 구름을 부려놓고 비까지 흩뿌린다.

「손곡 스승이라면 취우(翠雨)라고 했을 것이다. 비도 제각기 모양새와 성정과 성깔이 있다고 했다. 여린 구름장에서 흩뿌려지는 가는 빗줄기에 색깔을 입힌다면 푸를 취, 비우라는 말로 표현할밖에」

스승 이달은, 모든 것은 자연의 순리대로 흘러가고 흘려야 하며 왜곡되지 않은 본연의 색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했다. 초희는 자신의 머리 위로 흩뿌려지는 비를 보자 ‘취우’란 이름부터 떠올린다.

「비 맞은 청사초롱은 여인처럼 함초롬하다. 아침나절만 해도 사각거림이 보기 좋았는데 뻣뻣하던 풀기에 물기가 스며들자 금방 수그러졌다. 모양이 흐트러진 청사초롱의 사윈 모양새가 어머니의 모습에 겹쳐진다. 깊은 숨소리로, 저고리 앞섶에 완강하게 보듬어 안은 옹색한 사연들을 내비치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안존함... 안으로만 안으로만 잦아드는 어머니의 모습이 풀기 가신 청사초롱처럼 처연하다」

   
혼불문학상수상작독후감 우수상  윤희경씨

 

초희는 청사초롱에서 과연 어머니의 모습만을 보았을까. 저고리 앞섶, 곱디고운 색의 고름으로 그 한복을 걸친 여인의 성정과 아름다움을 은은하게 부각시킬 수 있는, 장신구 정도의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초희의 생각 한 자락에 여며진 앞섶과 고름은 칠거지악과 시대 속에 꼭꼭 여며 두어야 하는 여인들의 자물쇠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내 앞가슴이 덩달아 무겁게 눌러 앉는다. 제 집 안에 나고 드는 것들, 옮겨지는 발걸음 걸음마다 새롭고 아쉽게 비치는 것들을 무엇 하나 소홀하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초희를 두고 어머니 김 씨의 가슴은 아리고 쓰렸다.

「공자님 말씀에, 여자는 사람들 앞에 구부리는 것이니, 삼종의 도가 있을 뿐이라고 하셨다. 집에서는 부모를 따르고, 시집가면 남편을, 지아비 죽으면 자식을 쫓아 잠시잠깐이라도 스스로 이루는 바가 없어야 한다고 했느니, 아예 서책 보기를 버러지 보듯 하는 게 좋을 게야....」

   
 

 

초희의 검고 깊은 눈망울에 그렁하니 눈물이 차올랐다.

어머니 김 씨는 애초에 사랑채에서 글을 읽히고 시를 짓게 했던 것을 극구 말리지 못한 게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 헌데 함을 받는 날부터 퍼붓는 빗줄기에 묵직한 어둠 골이 들어서 어슬렁거리기 시작하더니 가늘던 빗줄기가 갑자기 쐐쐐 퍼붓기까지 한다.

그간 벌건 땡볕이 지글지글 땅을 태웠고, 새까맣게 그을린 농군들이 퍽퍽 갈라진 마른땅에 한숨만 부려놓았던 걸 생각하면 반겨야 할 단비다. 그러나 초희의 결혼을 앞두고 함이 들어오는 날 내리는 비를 어느 누구도 비를 반길 수 없는 심정이었다.

「열 손가락의 맞물림 같은 것이 결혼인가. 너무 조여 잡은 손가락들이 어느새 저려든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반드시 행복한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서로의 체온을 묻히고, 서로의 지문을 가슴에 감으면서 서로의 숨결 소리를 듣는 것. 그것이 결혼이라는 만남일까. 초희는 고개를 흔들었다. 시댁 사람들과 어우러져 잘 해낼지, 그것에 대한 불안도 가슴 밑바닥에 안개처럼 고여 온다.」

그녀에게도 그녀의 집안에서도 그 위엄과 권위가 어떠하다 해도 여식을 둔 처지에 하늘이 심술을 부리는 결혼과 닥쳐올 시집살이는 쉬이 넘어 볼 수 없는 엄청난 절벽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깊숙이 묻어둔 절절한 이를 이제는 정말로 묻어 두어야 하니 제 마음과 상관없이 짝을 지워 연을 맺어가야 하는 여인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그 비는 어쩌면 초희의 마음을 대변해 주고 있는지 모르겠다. 허나 모든 것들이 여인의 방자함과 책임으로 부정하게 취급되던 시대. 거기가 난설헌 허초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이었다.

 

난설헌.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이름. 아무에게도 불릴 수 없던 이름. 그러나 초희는 자신의 자호를 지었다. 그것은 사내들에 대한 도전이나 시대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한 반감이 아니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주어져야 하는 것’에 대한 당연함이었다. 그 당연함을 ‘유별남’으로 받아들이는 시대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난설헌이었기에 보는 내내 안타까움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난설헌을 향한 화도 가슴속에서 복받쳐 올랐다. 난설헌의 행동들을 보며 그녀가 당해내야 하는 고초를 보며. 책 속의 문장을 박박 지워 고칠 수도, 내 책 위에 그렇게 한다고 내용이 바뀔 수도, 그녀의 삶을 변화시켜 줄 수도, 그 시대의 시대상에 삿대질을 할 수도 없는 위치에서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좀 네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니, 하는 식의 마음뿐이었다. 왜일까. 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난설헌을 다그치고 몰아붙이는 일이었을까……. 비겁하다.

그렇다 해도 읽는 동안 내내 품고 있던 화는 쉽게 수그러들진 않았다. 내가 화를 낼 수 있는 이는 그미밖에 없었다. 못났다. 못난 나 자신을 나에게 계속 숨길 수 없었기에 그미를 향했던 화는 점점 나에게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공감해줄 수 없는 못난 마음.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가질 수 있는 고민이고 고충이건만. 스스로는 버텨낼 용기가 없어 뒤로 숨고 옆길로 돌고. 그딴 걸 왜 내가 버텨내야 하느냐 안 하면 그만이지 하고 피해가면서. 어차피 지난 과거의 사람이라고, 어차피 내가 아니라고. 나 자신에게는 벌어지지 말았으면 하는 것들을 왜 그들에게 다그침을 내쏘는가.

비겁한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그렇게 비겁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내 선택은 그 불만을 허초희를 처절하리만치 불쌍한 여인으로 만들고 그런 그녀를 비난하게끔 만든 작가에게로 이어갔다. 하하.

작가의 말이나 작가 의도를 잘 읽지 않는다. 나는 내가 읽고 싶지, 아무리 작가라 해도 그들의 생각대로 휘둘리고 싶진 않아서다. 미술관에서도 음악회에서도 공연에서도 책에서도 모든 건 내가 내 마음대로 체화시켜 읽고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 쌓여가는 불만 속에 작가의 말을 읽게 되었다. 아름다운 여인에 대해 쓰고 싶었다던. 그리고 그것이 난설헌이 제격이며 그녀에게서 많은 것을 내려놓고 한 여성으로서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던. 그러나 이것이 한 여인으로서의 삶이란 말인가. 왜 굳이, 꼭 너무나 의도한 것처럼 처연하고 고난의 연속인 시집살이에 초점을 맞추어 두었는가. 이러고 싶었을까. 같은 여성 작가로서, 시모인 양 씨가 느꼈던 질투심은 조금도 없었는가. 이 글은 누구를 위한 글이고 누구를 향한 글인가. 그냥 내내 여자는 시집살이가 힘들어하는 찡찡거림이 강하게 밀려왔다. 그리고 솔직히 지금도 그 부분에서의 아쉬움이 마음 한편에 남아 맴돈다.

하지만 어느덧 나 또한 초희에게서 느낀 화와 안타까운 한숨이 그녀를 붙들어 놓고 억지를 부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놓아주어야 한다. 그미를. ‘솟대’처럼.

「솟대라……. 긴 장대 위에 앉아 있는 나무새를 말함이라. 솟대는 그렇지. 천상의 세계를 향해 비상하려는 나무새. 지상과 하늘을 연결하는 기둥이겠지. 농사짓는 농부들, 산에 사는 사람들, 고기 잡는 어부들의 사연들까지 하늘로 실어가는 전령의 새라는 말이 있어.」

오라버니 허봉과의 대화 속에 초희는 솟대를 이야기한다. 사실 이 대화는 초희가 대갓집 규수답지 ‘못하게’(못한 게 무어란 말인가. 흠.) 새벽녘 눈밭을 맨발로 거닐며 온몸으로 그것을 느낄 적에, 그녀의 마음속에 영원히 존재할 사람, 뒤춤으로 살짝 감출 수밖에 없었던 그를 두고 꺼낸 말이었다. 사내와 여인의 마음이 신분이란 올가미에 묶여 절대로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그와 초희. 그들의 이룰 수 없는 현실. 그러나 그것을 초월한 사랑.

「실은 나무로 깎은 오리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다.」

오라버니인 허봉은 어쩔 수 없는 일침을 가할 수밖에 없었다. 실은 나무로 깎은 오리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하늘을 향해 날아가듯 솟아 있지만 결국 긴 장대에 묶여 있는 새, 날지 못하는 오리, 나무로 만들어진 오리. 하늘로 날 수 없는 것을 높이 올려놓아 나는 흉내라도 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솟대. 그러고픈 마음, 염원. 그런 솟대.

그렇게 그것이 처음엔 비극이고 안타까움이고 벽 앞에 무너진 한 여인의 인생이고 하늘로 날 수 없어 높이 올려놓아진 솟대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호신인 오리의 상징성은 농사에만 끝나지 않았지요. 마을의 화재막이로, 더러는 홍수막이로, 마을을 지켜주는 구실까지 함축하고 있다지 않아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오라버니, 오리는 철새이고 그래서 이승과 저승을, 인간과 신의 세계를 넘나드는 신의 새라고 믿는 순박한 토민들의 신앙이 아닐까 싶어요.」

라던 초희의 말대로 초희는 그녀의 현실과 그녀만의 세계를 넘나들며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흘려보냈는지도 모르겠다. 배운 대로, 느낀 대로. 처음부터 그랬듯 자신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인 대로 흘러간다. 흘러, 흘러, 간다.

마음에 품은 사람과 연이 이어지지 못했어도, 남편 김성립에게 겁탈을 당하고 학대를 당했어도, 시모 송 씨의 질투 속에 모진 시집살이에 아이들을 잃었어도, 몸종 덕실이가 제 남편 김성립을 꼬여내어 안방을 차지하고 들어앉았어도, 의지하던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죽음으로 잃었어도. 모든 것을 순리대로 흘려보냈다. 그녀는 이미 날고 있었다. 그녀에게 솟대의 장대는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묶여 있던 그때, 그녀는 묶여 있는 사실보다 날고 있는 마음의 진실을 본 것이다. 그것은 내가 느낄 수 있는 내가 치부할 수 있는 부당함이 이미 아니었다. 이 숭고한 여인의 삶에 누구라고 훈수를 두고 어리석다 타박할 수 있을까.

글이란 것이 얼마나 신기한 요술을 부리는지 이번에야 알았다. 난설헌이 처음 출판되었을 때 샀다. 표지 그림도 예뻤고, 나도 난설헌쯤은 알고 있었다는 걸 책꽂이에 꽂아 두고 티를 내고 싶었다. 그때는 이렇게 마음이 저리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아닌 세월이라 함이 맞는 순간들이 지나오자 마음이 저린다. 비단 아픔만이 아니다.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한마디로 표현될 수 없는 저림이 있다. 그것이 내 마음에서 가슴을 짓찧는다.

난설헌.

난초. 자신을 숙여 한 떨기 꽃을 더 빛나게 해주는 식물. 주인공이 아닌 주인공을 빛나게 하여 더욱 빛을 발하는 식물. 그것이 초희가 아닐까.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꽃처럼 그래서 하얀 눈을 더욱 희게 빛나게 해주는 꽃처럼 초희는 바로 그 꽃이 아닐까.

봄이다. 빛이 좋은 골목에 학교 앞 큰길에 산수유가 슬며시 노른자 같은 보송한 모습을 드러내고 매화가 피어오르며 개나리가 흐드러진다. 모두가 소리 없이 수줍게 다가왔다. 추운 겨울 속이 아닌 따스한 봄날의 꽃에서도 이제는 자유로울 난설헌 초희를 느낀다.

 

○수상소감) 우수상 - 윤희경

“윤희경 선생님이시죠?”

하며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택배 기사님일 수도 있으니 받아 보기로 했다. 그런데 서울지방 검찰청 모 수사관이었다.

사기 혐의로 구속 수사 중인 박정철의 가방에서 대포통장이 나왔는데 내 명의로 된 것이란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것이 내가 피해자로서만이 아니라 박정철에게 내 명의를 직접 빌려줘 범죄에 공조를 했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공범으로서의 용의선상에도 올라 있어 조사 중이라는 것이다. 놀란 맘을 진정시키고 보이스피싱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긴 했지만 벌렁거리는 가슴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후훗. 두 달 전 일이다.

너무 쓸 데 없이 솔직한 고백이다만…, 한 달 전 이별을 하고난 후에는 수신 전화나 메시지가 없다. 없다기보단 수신 전화 열의 여덟은 맛있는 스팸전화거나 택배 기사님 전화이고 마찬가지로 수신 메시지도 스팸메시지거나 택배 기사님이다. 나머지 둘은 가족. 하하하.

벨이 울렸다. 이놈의 전화기는 하는 일도 없으면서 웬 배터리만 그렇게 잡아드시는지. 일어나 충전기를 꽂아 놓은 곳으로 갔다. 공공장소였기 때문에 벨소리가 울리게 방치해 둘 수 없었다. 모르는 번호라 보통은 받지 않지만 택배 아저씨일지도 모르니까. 하하.

“여보세요.”

“윤희경 선생님이시죠?”

역시나~했는데...! 기적이 일어났다. 너무 과장된 표현일 수 있겠지만 그만큼 역대급으로 기뻤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사관의 전화를 받았을 때만큼이나 떨리고 떨리고 떨렸다. 눈물도 났다. 정말 기뻤다.

인정받고 싶었다, 나도.

(물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기쁜 일이지만) 수상을 축하합니다!! 같은 화려한 인정이 아니라.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나를 그리고 앞으로 글을 쓰며 살아가고 싶어 하는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언젠가. 그리고 언제나. 무엇보다 나를 부끄러워하며 안으로 안으로 숨겨놓고 있는 내 자신에게 가장 보여주고 싶었다. 할 수 있다는 걸.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내 글에. 시작만 하고 진행시키지 못하는 내 이야기에. 그렇게 해서 움츠러든 나를 조금씩 조금씩 위로하면서 밖으로 끌어 내주고 싶었다. 그렇게 응모를 결심했다. 그리고 짧지만 내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었다. 너무 기뻤다. 그리고 마침표 뒤에 마침표를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용기와 흥분이 샘솟았다.

“나 상탔어!!”

처음 마음은 수상 소식을 듣고 같이 있던 친구하고만 알고 조용히 넘어가고 싶었다. 난설헌이 생각났다. 그리고 난설헌이 생각났다. 알리고 싶었다. 모두 기뻐해 줄 것 같았다. 그 날은 너무 맑고 화창했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가족들, 친구들의 목소리도 덩달아 기쁨에 젖어 그 날의 햇살처럼 따뜻하고 바람처럼 향기로웠다.

종일 난설헌이 생각났다. 이런 걸 바란 것이었을 텐데. 그저 자연스러운 일상을. 함께 나누고 함께 기뻐하는 이런 일상을. 누리는 삶이 아니라 흘러가는 순간들을. 유독 눈에 뜨이던 팔랑거리며 날아가는 하얀 나비를 보며 동요에 감사함과 애잔함 얼굴도 알지 못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나비야 나비야 이리날아 오너라

노란나비 흰나비 춤을 추며 오너라

봄바람에 꽃잎도 방긋방긋 웃으며

참새도 짹짹짹 노래하며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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