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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8-04-17 09:41
[중앙일보 20180417]"그렇게 많이, 빨리 써서 뭘 남길 건가" 『혼불』 작가가 보여준 느림의 힘
 글쓴이 : 최명희문학관
조회 : 26  
   http://news.joins.com/article/22541595 [6]

 


매체: 중앙일보

날짜: 2018년 4월 17일

제목: "그렇게 많이, 빨리 써서 뭘 남길 건가" 『혼불』 작가가 보여준 느림의 힘

출처: http://news.joins.com/article/22541595

쓴이: 김준희 기자


 

 

최명희문학관 뒤뜰. 전주=김준희 기자

최명희문학관 뒤뜰. 전주=김준희 기자

 
"글 한 토막 한 토막 참 실감 나게 썼어."
지난 10일 오후 전북 전주시 풍남동 '최명희문학관'. 70대로 보이는 남성이 친구에게 한 말이다. 소설 『혼불』을 쓴 고(故) 최명희(1947~1998) 작가를 두고서다. 전주 한옥마을에 자리 잡은 최명희문학관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임금의 화상)을 모신 경기전 동문 맞은편 골목에 있다. 경기전과 오목대 등은 『혼불』의 주무대이기도 하다.  

'홀로 즐기는 공간' 최명희문학관 가보니
전주 출신 최명희의 삶·작품 조명
문학관 본관 이름은 독락재(獨樂齋)
평생 글쓰기 즐거움 삼은 작가 빗대
17년간 『혼불』 원고 1만2000장 완성
작가 "나는 일필휘지를 믿지 않는다"
예술가·주민이 함께 만드는 문학관

 

최명희문학관 뒷문. 최기우 학예연구실장은 "관광객들이 앞문보다 뒷문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더 많다"고 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한 해 1000만 명이 몰리는 '핫플레이스'에 둥지를 틀어서일까. 평일 낮인데도 최명희문학관은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왔다는 김정자(67·여)씨는 "『혼불』은 10여 년 전 읽었다. 서민들의 삶과 캐릭터를 전라도 말로 깊이 있게 다뤘다. 이런 대작을 쓰느라 작가가 요절한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지난 10일 최명희문학관 전시실을 관람 중인 김정자(67·여)씨. 이탈리아 로마에서 왔다는 김씨는 "『혼불』은 10여 년 전 읽었다. 서민들의 삶과 캐릭터를 전라도 말로 깊이 있게 다뤘다. 이런 대작을 쓰느라 작가가 요절한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지난 10일 최명희문학관 전시실을 관람 중인 김정자(67·여)씨. 이탈리아 로마에서 왔다는 김씨는 "『혼불』은 10여 년 전 읽었다. 서민들의 삶과 캐릭터를 전라도 말로 깊이 있게 다뤘다. 이런 대작을 쓰느라 작가가 요절한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이날 찾은 최명희문학관은 인파로 북적이는 한옥마을 거리와 달리 '섬'처럼 고요했다. 처마에 달린 풍경만 이따금 땡그랑거렸다. 문학관 마당에는 나무 마루와 의자·책상 등이 놓여 있다. 곳곳엔 『혼불』에 나오는 명문(名文)들이 보였다. "천하에 제일 몹쓸 것이 건방진 것이니라. 소인 못난 종자가 제멋에 비틀어져 꼬이고 순탄치 못하면 제 속이 뭉쳐 옹이가 생기지." 뜨끔했다.  
 
최명희문학관 마당 담장에 세워진 '꽃심을 지닌 땅' 나무 조각. 최명희는 『혼불』에서 전주를 이렇게 표현했다. 꽃심의 사전적 의미는 '꽃의 심지'지만, 상생과 조화, 삶의 여유와 멋, 사람의 도리와 의로움 등 '전주 정신'에 빗대기도 한다. 전주=김준희 기자

최명희문학관 마당 담장에 세워진 '꽃심을 지닌 땅' 나무 조각. 최명희는 『혼불』에서 전주를 이렇게 표현했다. 꽃심의 사전적 의미는 '꽃의 심지'지만, 상생과 조화, 삶의 여유와 멋, 사람의 도리와 의로움 등 '전주 정신'에 빗대기도 한다. 전주=김준희 기자

마당 담장 위에는 '꽃심을 지닌 땅'이라는 나무 조각이 세워져 있다. 최명희는 『혼불』에서 전주를 이렇게 표현했다. 꽃심의 사전적 의미는 '꽃의 심지'지만, 상생과 조화, 삶의 여유와 멋, 사람의 도리와 의로움 등 '전주 정신'에 빗대기도 한다.      

최명희문학관 본관 앞에 걸린 간판 '독락재(獨樂齋)'. 홀로 즐기는 공간이란 뜻이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집필 활동에만 매달린 최명희가 스스로 즐기는 경지에 이르렀대서 지인들이 지은 이름이다. 전주=김준희 기자

문학관 1층은 전시실과 체험공간, 작가의 방으로 꾸며져 있다. 지하에는 작가의 책을 보관하는 수장고와 세미나실이 있다. 문학관의 본관 이름은 '독락재(獨樂齋)'다. 홀로 즐기는 공간이란 뜻이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집필 활동에만 매달린 최명희가 스스로 즐기는 경지에 이르렀대서 지인들이 지은 이름이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최명희가 '늘 말소리 들리는 곳에 있어 주었으면 싶다'던 친구 이금림씨(드라마 작가)에게 보낸 171㎝ 길이의 편지가 전시돼 있다. 그가 스물아홉이던 1975년 6월 19일에 쓴 편지다. 2009년 2월까지 연구·조사된 최명희의 작품은 소설과 수필·콩트·시 등 모두 198편에 달한다. 이 가운데 최명희문학관에선 76편을 소개하고 있다.  
 

본관 전시실에 걸려 있는 사진.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쓰러지는 빛』으로 당선된 최명희가 시상식에서 당시 홍진기(사진 오른쪽) 중앙일보 회장으로부터 상을 받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전주 기전여고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한 최명희는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쓰러지는 빛』으로 당선돼 등단했다. 1981년 동아일보 장편소설 공모에 『혼불』 1부가 당선됐다. 혼불은 '사람의 혼'을 말한다. 최명희의 대표작이자 미완성 대하소설인 『혼불』은 1930년대 전북 남원의 몰락해 가는 한 양반가의 며느리 3대 이야기를 통해 당시 우리 민족의 힘겨웠던 삶을 그린 작품이다.  
 
『혼불』 원고지를 모두 쌓으면 높이가 3m에 이른다고 한다. 최명희는 1996년 12월 『혼불』 10권을 펴내기까지 17년간 육필로 꼬박꼬박 원고지를 메워 장장 1만2000장을 써냈다. 최명희문학관에 전시된 원고 4000장은 전체 원고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문학관에 전시된 최명희의 생전 모습. 전주=김준희 기자

최명희는 "나는 나의 일필휘지(一筆揮之)를 믿지 않는다. 원고지 한 칸마다 나 자신을 조금씩 덜어 넣듯이 글을 써내려 갔다"고 말했다. 『혼불』을 가리켜 소설가 최일남은 "미싱으로 박아댄 이야기가 아니라 수바늘로 한 땀 한 땀 뜬 이바구(이야기의 방언)"라고 감탄했다.  
 
최명희는 학창 시절부터 '소년 천재 문사(文士)'로 이름을 날렸다. 고 3 때 쓴 수필 '우체부'는 학생 작품으로는 최초로 고교 '작문'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난소암을 앓던 그는 1998년 12월 11일 세상을 떠났다. "아름다운 세상, 잘 살고 갑니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향년 51세였다.   
 

최명희가 17년간 육필로 꼬박꼬박 원고지를 메워 장장 1만2000장을 써낸 『혼불』 원고. 전주=김준희 기자

전시실 책장에는 최명희가 보던 각종 고문서와 역사·민속·사상 관련 자료와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다. '수공(手工)의 작가'로 불린 그가 늘 곁에 둔 만년필과 칼·철끈·자·가위 등 이른바 '문방오우(文房五友)'도 전시돼 있다. 그가 "끝없이 오리고 붙이고 다시 쓰는 과정이 내 작업"이라고 말한 증거들이다.  
 
"제 고향(故鄕) 땅의 모국어(母國語)에 의지하여 문장(文章) 하나에 의지하여 한 세계(世界)를 세워보려고 합니다." 최명희가 1988년 9월 1일 당시 전북일보 편집국장이던 김남곤 시인에게 보낸 편지 일부다. 『혼불』 2부 연재를 앞둔 그의 굳은 각오가 담겼다.  
 

'수공(手工)의 작가'로 불린 최명희가 늘 곁에 둔 만년필과 칼·철끈·자·가위 등 이른바 '문방오우(文房五友)'. 전주=김준희 기자

전시실에는 '느림'의 가치를 깨친 그의 어록이 곳곳에 숨어 있다. "많이 쓰고 빨리 쓸 수 있고 정보를 입력할 수 있으며 얼마든지 수정이 가능하다고 사람들은 나한테 컴퓨터 쓰기를 권한다. 그러나 문득 한 번만 돌이켜보면 그렇게 '많이' 쓰고 '빨리' 써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 사뭇 의아해진다." 지금 봐도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통찰력이다.  
 
『혼불』에는 전북의 역사와 문화 콘텐트가 풍부하다. 호남지방의 세시풍속과 관혼상제·노래·음식·의복 등을 생생한 우리말로 복원해내 '우리 풍속의 보고(寶庫)' '모국어의 보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혼불』을 연구한 논문과 평론도 수두룩하다. 국문학을 비롯해 조경학·문화인류학 등 다양한 학문에서 『혼불』을 연구 주제로 삼고 있다. 유지헌 상명대 의류학과 교수가 쓴 '『혼불』에 나타난 복식의 의미 분석'(1998)이 『혼불』 관련 1호 박사 논문이다.  
 

문학관에선 최명희의 서체를 따라 쓰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전주=김준희 기자

주민과 관람객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혼불』을 함께 읽으며 전주의 역사와 풍습을 배우고 서로의 감상과 의견을 나누는 독서 프로그램인 '다 같이 혼불 한 바퀴'가 대표적이다.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보내는 '1년 뒤에 받는 나에게 쓰는 편지'도 인기다. 원고지에 『혼불』 일부를 필사하거나 화선지를 이용해 작가의 서체를 따라 할 수도 있다. 문의는 063-284-0570.
 
최명희문학관은 2006년 4월 문을 열었다. 전주시 화원동(현 풍남동)에서 태어난 작가의 생가 인근 폐가를 전주시가 사들여 지하 1층, 지상 1층의 한옥(연면적 481㎡) 형태로 문학관을 지었다. 전주시의 위탁을 받아 '혼불기념사업회'가 문학관을 운영하고 있다. 최기우(46) 학예연구실장 등 직원 4명이 상주하고 있고, 1년 예산은 인건비 포함해 1억5000만원이다. 앞서 작가 부친의 고향이자 『혼불』의 배경인 남원에는 2004년 10월 작품 중심의 '혼불문학관'이 개관했다.
 

최명희문학관 전시실 내부 모습. 전주=김준희 기자

최명희문학관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는 문학관이 106개, 전북에는 9개가 있다. 최명희문학관은 전주에 처음 생긴 문학관이다. 해마다 30만 명이 찾는다. 관람객 수만 따지면 국내 문학관 중 상위권에 손꼽힌다. 거꾸로 문학관 규모와 예산 면에선 제일 작은 축에 낀다.  
 
하지만 많은 문학관이 최명희문학관을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한다. 전문성을 갖춘 직원들이 문학관을 지키며 짜임새 있고 알찬 프로그램들을 꾸려서다. "읽어 봤자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 액자들만 걸려 있고, 으레 가는 관광 코스로 전락한 일부 문학관과는 다르다"고 문학관 측은 강조했다. 
 

최명희의 얼굴. 전주=김준희 기자

최기우 학예연구실장은 "최명희문학관은 서예가는 글씨로, 화가는 그림으로, 공예가는 공예품으로 지역 예술가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문학관"이라고 설명했다. 소설가이자 극작가이기도 한 최 실장은 "어느 문학관이든 산 사람들의 호응을 받지 못하면 오래 가지 못한다"며 "최근 전주 한옥마을이 '먹방투어' 코스라는 비판도 받지만 최명희문학관은 전주가 여전히 고즈넉한 공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고 말했다.
 
최명희문학관에 전시된 대하소설 『혼불』. 전주=김준희 기자

최명희문학관에 전시된 대하소설 『혼불』. 전주=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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